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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용 변호사
지난 8일 오전 11시 인천시청 앞 현관 계단에 수십 명의 시민단체 회원들이 모였습니다. 인천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 발족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위해서였습니다. ‘과거는 기억하지 않으면 되풀이된다’는 말을 신조로 모형 소녀상을 옆에 세우고 47개 참여 단체의 대표들이 나와 왜 이 시점에 소녀상을 건립해야 하는지 열변을 토했습니다.

 사실 작년 12월 28일 박근혜정부가 한국과 일본의 외교장관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합의’했다고 발표했을 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물론 대다수의 국민들은 갑자기 무슨 ‘합의’냐며 일본이 국가적으로 ‘위안부’ 범죄를 저지른 데 대해 진정한 사과조차 하지 않는데 ‘합의’라니 말도 되지 않는다고 항변했습니다. 그런데 들려오는 얘기는 일본이 10억 엔을 출연하는데 이는 배상금이 아니라는 것, 이번 ‘합의’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라는 것 등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얘기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나아가서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이 일본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도록 한국 정부가 잘 해결(?)하겠다는 약속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대학생들을 시작으로 시민들이 ‘평화의 소녀상’ 지키기에 나섰고, 추운 겨울밤을 무릅쓰고 뜬눈으로 소녀상을 지켜내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2016년 새해 들어 인천에서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와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인천행동’이 결성됐고, 매주 수요일 저녁 동암역 광장을 시작으로 거리 서명을 벌여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는 무효입니다!’, ‘일본은 위안부 범죄행위에 대해 진정한 사과를 해야 합니다!’, ‘겨우 10억 엔에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의 원한을 팔 수는 없습니다!’ 동암역 거리 서명에는 특히 여성들의 호응이 많았고, 나이 든 분들도 적극 지지해 줬습니다. 민족의 한을 품은 문제에는 남녀, 나이, 신분도 구별이 없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무엇보다 ‘진상 규명’과 ‘법적 책임’이 중요합니다. 일본은 아직까지도 일본군 위안부가 국가적으로 자행한 범죄행위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그 규모와 피해 정도 등 진상 규명도 외면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초 제국주의 침략으로 우리 한반도를 짓밟고 노략질한 일본은 1930년대 중반 중일전쟁을 시작으로 중국과 동남아 침략을 본격화했고,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함께 2차 세계대전이라는 파시즘의 극단적인 전쟁놀음을 저질렀습니다. 그 와중에 일본군에게 끌려간 우리 젊은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일본군의 성노예가 됐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나라에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해마다 생을 마감하는 분들이 늘어나 몇 분밖에 생존해 있지 않습니다. 그런 만큼 그들의 아픔을 달래 주고 한을 씻어 줄 시간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10대·20대 꽃다운 나이, 그때 기억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 곱던 처녀들이 전쟁터에 끌려다니면서 인간으로서 가장 힘든 고통을 겪으며 병들어 죽고 학살당하면서도 모질게 살아남아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은 ‘평화’의 상징입니다. 오직 ‘평화’만이 그들에게 힘을 주고, ‘평화’만이 그들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전쟁의 희생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인천은 그동안 ‘위안부’ 할머니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달래 줄 ‘평화의 상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전 시민적으로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기로 한 것입니다. 오는 8·15 광복절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기로 하고 지난 8일 건립추진위원회 발족을 시작으로 거리에서 모금하고, 각 시민사회단체에서 모금하고 있으며 뜻이 있는 시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번 ‘평화의 소녀상’ 건립은 단지 소녀상이라는 동상 하나를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20세기 38년 동안 일제의 압제 하에 고통받은 우리 민족이 겪은 또 하나의 비극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나아가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고 ‘평화’가 와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진정한 ‘평화의 소녀’ 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참여해 다시는 이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는 기억하지 않으면 되풀이되기 때문입니다.

 동암역에 가면 위안부 합의 무효 서명대 옆에 모형 소녀상이 있습니다. 아직은 모형 소녀상이지만 조금 지나면 아름다운 ‘평화의 소녀상’이 될 것입니다. 동암역 그곳에 매일 저녁에 가면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와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위한 참여의 광장이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나의 조그만 참여에서 시작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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