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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를 떠올리면 연관 검색어처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많은 이미지들이 있다. 우선 그녀는 예뻤고, 화려했으며, 사치스러웠다. 좋지 못한 의미로 얼굴값도 했다. 그녀는 숱한 염문설의 주인공이었으며, 철딱서니가 없기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 백성들에게 "케이크라도 먹지!"라는 황당한 말을 남겼을까!

 그러나 그녀를 둘러싼 이 많은 이야기들 중 절반 이상이 왜곡된 것이라는 사실 또한 널리 알려져 있다. 비록 당시 그녀의 철없는 삶이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됐음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그 어떤 죄인이라도 자기만의 입장이란 게 있듯이 그녀에게도 그만한 사연이 있었다. 오늘 소개할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는 혁명으로 사형되기 직전까지 베르사유 궁에서 지낸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오스트리아의 여황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로 태어난 ‘마리아 안토니아 요제파 요한나’ 공주는 열네 살의 어린 나이에 프랑스의 루이 16세와 정략결혼을 하며 ‘마리 앙투아네트 조세프 잔느’가 된다. 익숙했던 고국의 문화에서 벗어나 낯설지만 화려한 프랑스로의 진입은 십대의 어린 소녀가 홀로 감당하기에 쉽지만은 않았다. 이런 중에 그녀에게 지워진 역사적 의무는 왕위를 계승할 후계자를 낳는 것뿐이었다. 하나 설상가상으로 남편 루이 16세는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아름다운 새장에 갇혀 버린 한 마리 가련한 새처럼 외롭고 쓸쓸한 나날은 견뎌 가고 있었다.

 무려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2세를 잉태하지 못해 책망받았던 그녀의 고단하고도 공허한 삶은 어느새 사치스러운 패션과 여흥으로 가득 차 있었다. 누구와도 진실한 마음을 나눌 수 없었던 그녀는 옷, 구두, 맛있는 음식과 도박 등에서 위안을 얻는다. 이 작품은 바깥 세상의 분위기는 전혀 알지도 못한 채 자신의 허기진 마음을 달래려 했던 한 여인의 일생을 폐쇄적이면서도 화려한 왕궁 생활에 한정해 접근하고 있다.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는 할리우드 여성 감독인 소피아 코폴라의 2007년 문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당시 개봉과 함께 뜨거운 논란이 됐던 부분은 역사 속 실제 인물에 대한 정확한 고증보다 아름다운 베르사유 궁과 그 안을 화려하게 채운 각종 소품과 장식물 등이 현란하게 나열된 것에 대한 아쉬움이 그 까닭이었다. 파스텔 톤의 화사한 색채와 현대의 팝음악을 18세기의 역사적 인물의 일대기 전면에 내세운 배치는 스타일 면에서 새로웠으나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다양한 매체와 역사에서 사치와 허영 및 문란함으로 비난받아 온 그녀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철없던 그녀는 고작 십대 소녀였으며,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쓸쓸함을 달랠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외로운 한 사람이었음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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