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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 방긋∼"

 이렇듯 오글거릴(?)법한 인사말을 요즘 같은 사제 간 불신 세태에 나누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지 의문이다. 하지만 단순한 인사말이 이 학교를 지역 명문 중학교로 거듭나게 했다는 사실이 흥미롭기까지 하다.

 불가능한 일을 실현시킨 주인공은 남양주시 퇴계원중학교 박수용(48)학생안전인권부장, 옛날 말로 ‘학주’다.

 퇴계원중은 1969년 개교한 50년 전통의 학교지만 낙후된 지역 인프라 때문인지 유독 이혼가정이나 조손가정 학생이 많다. 그러다 보니 교사에 대한 폭언, 흡연, 폭력, 월담, 등교 거부 등 교권에 대한 도전이 계속됐고, 학부모들 사이에서 기피 학교로 전락했다.

 그러던 지난 2011년 3월, 그가 학주를 맡으면서 상황이 돌변하기 시작했다.

 22년 교직생활에서 10년 넘게 학주를 맡아 온 베테랑의 등장은 아이들에게 공포로 다가왔다고 한다. 한데 학교폭력위원회나 선도위원회를 통한 엄격한 처벌과 동시에 어른으로서의 사랑과 관심이 깊은 모습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징계는 학부모들과 함께 할 부분이 있는데 당시 지역적으로 ‘흔한 일인데 왜 난리지?’라는 인식이 팽배했어요. 징계만으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 나머지는 방법을 찾는 거였죠."

 그가 시작한 첫 번째 해법은 ‘인사’의 변화였다. 2011년 충북 음성 꽃동네를 찾은 것이 시발점이었다.

 그는 정신지체아들을 만난 수녀들이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라고 인사하는 게 신기했다고 한다.

 "무슨 상황인지 여쭤 보니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이 대다수인데 특별히 해 줄 것이 없어 ‘축복의 말’이라도 건네려는 마음이라고 하시더군요. 충격적이었죠. 그리고 이거구나 싶었어요."

 학교에 돌아온 그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학생 대부분을 만날 수 있는 정문에서 인사 지도를 하자고 마음먹었다.

 결과는? 당연히 망했다. 공포의 학주가, 벌 주고 통제하니 도망쳐야 할 것 같은 건장한 학주가 머리에 하트를 그리며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하고 인사를 하는데 누군들 편할 수 있으랴. 1년 넘도록 아이들의 반응은 시원찮았다.

 도저히 변할 기미가 안 보이자 그는 전략을 바꿨다. 학생회와 바른생활부 등 모범 학생들에게 먼저 따라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취지는 좋았는데 방법이 틀렸던 것 같아요. 일방적이었죠. 처음엔 모범 학생들도 안 하려고 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친구들이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학생들이 따라하더군요. 정말 감동 그 자체였어요."

 그렇게 3년이 지나고 폭발적 반응에 힘입어 올해부턴 ‘방긋’도 추가됐다.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 방긋∼"

 잘 따라와 주는 아이들이 그는 매우 고맙다고 한다.

 그는 학생들에게 긍정적 피드백을 줘야겠다는 마음에서 학년별 응모함 2개를 만들었다. 성적 순이 아니라 인사를 잘해서, 친구를 도와서, 수업 태도가 좋아서, 밝아서 등 순수하게 아이들의 생활태도를 보고 교사들이 응모권을 자유롭게 주는 방식이다.

 응모권은 추첨을 통해 학년별로 30명, 전교생 780여 명의 10%에 달하는 90명에게 선물을 주는 매개체다. 부상으로 인근 롯데리아와 베스킨라빈스 등에서 3천 원을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이 준비됐다.

 이 같은 노력으로 퇴계원중은 교정 곳곳에서 인사하며 웃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자연스럽게 문제학생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었다.

 단순한 인사의 변화가 퇴계원중을 기피학교에서 ‘선호학교’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유경자 교장의 전폭적 지원과 동료 교사들과 학생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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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선생님들이 수업 다녀오면 힘들어 했어요. 워낙 대드니까요. 이젠 교권에 대한 도전, 수업 중 자는 아이가 거의 없죠. 대신 응모권을 향한 초롱초롱한 눈빛을 쏘아대니 선생님들도 덩달아 신이 난다고 하더군요."

 소외돼 가는 문제학생들을 위한 그의 애정은 ‘사제동행 등산캠프’로 이어졌다. 반에서 가장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과 담임교사가 한 조를 이뤄 1시간 남짓 등산을 다녀오는 방식이다.

 교장 선생님의 배려로 김밥과 간식, 음료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템도 준비했다. 목적지에 다다르면 과자교환권을 걸고 진정한 보물찾기도 마련돼 있었다.

 D-day는 학생들이 가장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 시험기간 마지막 날 금요일이다. 가장 놀기 좋은 날 담임과 함께 있는 것도 싫은데, 공포의 학주가 동행하니 학생들의 불만이 폭주했다.

 하지만 첫 산행에서 담임교사와 자신의 힘든 부분, 심지어 가정환경까지 말하게 되면서 아이들에게 ‘인식의 전환’이 일어났다. 학생은 자신의 상황을 얘기할 기회를 얻고, 담임교사는 학생에 대한 오해를 떨쳐 버릴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결과물이었다.

 아이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자 "선생님 언제 등산 가요?"라는 문의가 쇄도했다.

 그는 한 번 더 업그레이드하기로 했다. 버스를 대절해 ‘1대1 사제동행 힐링캠프’를 만들었다. 정말 관심이 필요한 정예(?) 학생들만 데리고 담임교사와 1대1로 하루 일정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담임과 추억 동영상 만들기’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3만 원 상당의 상품을 내놓으니 아이들이 먼저 교사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함께 밥 먹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체험도 하면서 아이들은 자신들이 벌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상’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징계인데 재미와 추억이 가미되니 거부감보다 기대가 앞서기 시작했어요. 반강제적이긴 한데, 담임교사와 학생들이 마음으로 소통하는 데서 긍정적 효과가 더 컸죠. 특히 문제아라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떨쳐 버리는 기회가 됐다고 해요."

 그가 문제학생들을 더 애틋하게 생각하는 건 한마디로 ‘놀아 봤기 때문’이다.

 어릴 적 그는 갑작스러운 사정 악화로 유복한 아이에서 한순간에 불우 아동으로 전락했다고 한다. 연탄가스를 마셔 죽을 뻔하기도 하고, 비만 오면 집 안 장롱이 둥둥 떠다니는 집에서 살아온 그다. 중학생 때부터 해 온 농구는 키가 180㎝가 안 된다는 이유로, 당시 문제아 집결소였던 H고등학교로 진학할 수밖에 없었다.

 충분히 비관할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그는 ‘강해져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오히려 지금 생각해 보면 ‘다행이다’라고 말하는 그다.

 이때 그의 평생 은사가 등장한다. 지금은 퇴직한 김태윤 선생님이 침 좀 뱉는 친구들과 어울리던 그에게 의미 있는 뒤통수를 날린 것이다. 타협 없고 날카로운 모습이 영화 ‘일그러진 우리들의 영웅’의 주인공(교사) 같은 김 선생님의 애정 어린 말 한마디에 ‘저 분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스핑크스머리(불량아)를 한 조폭 학생이 있었는데, 옷도 그렇고 힘없는 애들 돈 뺏고 때리고 했어요. 하루는 선생님께서 그 학생을 지도하기 시작하는데, 반 친구들 모두 공포에 질릴 정도였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학생 부모님과 ‘사람 만들겠다’는 약속 하에 그러셨더군요. 학생을 위해 악역을 자처한 선생님이 정말 멋져 보였어요."

 인성은 김 선생님이 담당했다면, 학업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 친구 황병석 씨다.

 1학년 2학기 때 농구를 하면서 자연스레 친해졌는데 알고 보니 전교 1등이었다. 그는 당당히 "공부가 하고 싶어. 도와주면 고맙겠다"고 했단다. 이때부터 도시락 3개를 싸서 수위아저씨를 피해다니며 친구와 오후 10시가 넘도록 공부를 했다.

 결국 입학 초 63명 한 반에서 30등에 불과했던 성적은 2학년 2학기 전교 13등으로 올라섰다. 한마디로 기적이었다. 그는 내신 2등급으로 한국교원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갈 수 있었다.

 "죽자 사자 친구랑 안 떨어졌어요. 교원대 붙으니 학교에서 플랜카드를 걸어주는데 어깨가 으쓱해졌죠. 부모님도 좋아하시고요. 이 친구는 군대(ROTC)에서도 제 후임으로 들어와 함께 근무할 정도로 정말 신이 주신 진∼한 인연이에요. 요즘도 만나 덕분에 교사됐다고 말하죠."

 그는 끝으로 "학폭위를 통해 강제 전학 결정이 난 학생들에게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싶어요.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본질이 여기서 나온다고 보거든요. 앞으로도 본질을 잃지 않고 제도적 틀보단 마음으로 밀도 높게 다가서는 ‘선생님’으로 남고 싶어요"라고 말해 깊은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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