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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운 객원논설위원
문화재는 개인의 자산이 아니다. 후손에게 물려주고 가꿔야 할 우리의 자산이다. 그런데 이기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삼국유사는 고려 후기 승려인 일연이 쓴 고조선 이후부터 통일신라 시대까지의 일들을 기록해 놓은 역사서다. 삼국사기와 더불어 삼국유사는 교과서에 등장하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삼국유사는 현재 남아 있는 역사서들 중 단군 신화가 수록된 최초의 책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며, 신라인의 노래라 할 수 있는 14수의 향가와 묻힐 뻔했던 가야 역사를 기록한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또한 삼국, 특히 신라 사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더 의미가 있다. ‘유사(遺事, 남아 있는 일)’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삼국유사에는 삼국사기가 황당무계하다고 여겨 기록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거기엔 우리나라의 건국 신화는 물론이고 민간에서 널리 전해지던 설화들, 특히 불교 신앙과 관련된 고승 이야기와 사찰·불상·석탑 등에 얽힌 신비롭고 신령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고조선부터 후삼국까지의 기이한 역사 이야기를 담은 ‘기이편’,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역사를 당시 왕을 중심으로 한 연표로 구성한 ‘왕력편’, 신라를 중심으로 한 불교 전래의 유래를 기술한 ‘흥법편’으로 전체 5권 2책으로 구성돼 있다.

 그 중 기이편은 현존하는 가장 빠른 조선 초기 목판본으로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런데 17년 전, 정확히는 1999년 1월에 대학의 모 교수님께서 강도를 당했고 그것이 경매에 나오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강도를 당했다는 것도 그렇지만, 어떻게 문화재가 17년 동안 개인이 보관하는 문제점, 그 중요성에 비춰 국가도 목록에 기록되지 않았다는 점 등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무리 역사학자이고 사학자라고 해도 자기 소유처럼 관리했던 점이 첫 번째 심각함의 출발이다. 개인의 사유욕(私有慾)이나 개인의 명성을 위해 보관하고 있었다면 역사학자로서 자격이 없는 분이다.

국보급인 것을 알 만한 위치에서, 국보급을 개인이 보관한다니 그 또한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어쩌면 학자라는 지위를 이용해 혼자의 욕심을 채우려 했던 것은 아닐런지.

 이 사태를 지켜보면서 정부의 문화유산에 대한 목록화 작업이 서둘러 진행돼야 한다. 해외에 밀반출된 문화재를 찾는 것도 시급하겠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알지 못하는 문화유산에 대한 목록화를 서둘러야 후손에게 제대로 된 역사의식을 갖게 하는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문화재는 개인이 가지고 혼자만 보는 것이 아니다. 후손에게 우리가 어찌 살아왔는가를 반추하는 거울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개인이 함부로 다루고, 팔고 해도 그것을 처벌할 법이 아직은 미비하단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으며, 그것을 지키는 사람은 누구인지 개탄스럽다. 만일 이 책이 경매에 나오지 않았다면 그냥 국보급 문화유산이 기억 속에서 사라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600년을 지켜온 숭례문을 2008년 2월 11일 단 하루 만에 잃어버린 아픔을 경험했다. 8년이 지난 지금, 또 그러한 경험을 하려고 하는가. 얼마나 더 잃어야 문화재를 지키는 제대로 된 법을 만들 것이며, 그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가슴에 새길 수 있는지…. 이제는, 지금이라도 냉정하게 고민해야 한다.

개인이 있어야 사회가 있고 사회가 건전해야 국가가 온전할진데, 그 국가가 제대로 서지 못 한다면 개인도 의미가 없다. 문제점이 나오면 다시는 그 문제로 인한 똑같은 상황은 나타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문화유산은 우리가 살아온 흔적이다. 문화유산에 대한 소홀함은 개인의 욕심, 그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시스템, 그것을 만들지 못하는 입법의 기능 등 나열하기 버겁다.

 조선시대에는 조정의 신하들이 광화문을 드나들 때마다 해태(해치)를 쓰다듬으며 정의와 청렴의 의미를 되새기는 관행이 있었다. 지금이라도 우리 모두가 해태를 쓰다듬는 관행을 아침마다 시행해야 고쳐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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