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신시가지는 한여름에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5.5㎞의 ‘시민의 강’이 10여 년 전부터 흐르기 때문이다. 강폭이 넓어야 5m에 불과해도 제법 커다란 잉어가 떼를 이루며 움직이는 모습이 근사해 찾아온 친지에게 자랑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시민의 강은 인근의 하수종말처리장에서 정화한 물을 꾸준히 흘릴 수 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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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프랑스 파리는 도로 가장자리에 언제나 일정 양의 물이 흐른다. 받아놓은 빗물이 아니다. 도시 곳곳에서 처리한 하수를 흘리는 것이다. 그 물은 먼지를 제거하며 도시의 열을 식히거나 가로수와 공원의 나무와 잔디에 뿌리는 데 사용한다. 또한 시민들의 허드렛일이나 화장실의 대소변을 씻어내는 데 사용할 수 있다. 도시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양의 하수를 많은 돈과 에너지를 들여 정화한 뒤 강이나 바다에 버리는 건 아까운 일이다. 수자원을 절약하고 도시를 깨끗하게 만드는 프랑스의 하수 중간처리는 2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일부 복개한 하천에 흘리지만 인천의 하수 대부분은 처리한 뒤 바다로 버린다. 물론 바다와 하천이 오염돼 악취를 내뿜고 어획고에 차질이 생기므로 버리기 전에 정화해야 옳지만 활용하지 못하는 만큼 아까운 건 사실이다. 하수종말처리장이 바다 인근에 위치하는 만큼 정화한 물을 활용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그런 시설을 도시 한가운데 설치하기 어려울 것이다. 활용 가능성과 별도로 민원을 감당할 수 없겠지.

 도시 곳곳에서 하수를 중간처리한다면 달라질 수 있다. 바다나 강으로 버리기 직전 지점에서 한꺼번에 처리하는 하수종말처리 시설에 비해 규모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아파트 단지와 공업단지의 크기에 맞게 짓고 그 시설의 주변 또는 지상에 습지를 가진 녹지를 조성하면 주민에게 공원이 추가로 제공될 수 있고 그만큼 미세먼지는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중간처리인 만큼 완벽할 필요는 없다. 도시나 공원 관리, 허드렛물로 사용할 정도면 충분하다.

 연수구의 승기하수종말처리장은 설계용량보다 많이 들어오는 하수를 감당하기 어려워 시설을 확장해야 할 처지라고 한다. 처리되지 않은 하수까지 바다로 나갈 수 있으니 승기하수처리장의 시설을 확대하는 게 옳지만 어느 곳에 새로운 시설을 지어야 하는지 사회적 합의가 어려운 모양이다. 스스로 찾아온 국제 보호조류인 저어새가 깃드는 남동산업단지 유수지에 새로운 시설을 짓자는 제안이 나왔지만 국내외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생김새가 독특한 저어새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타이완과 일본의 시민사회에서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700마리에서 3천 마리 넘게 늘어났지만 아직도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그 저어새가 갯벌이 가까운 남동산업단지 유수지로 찾은 지 8년이 돼 간다. 저어새를 가까이에서 쌍안경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곳에 납득할 만한 대안 없이 하수종말처리장을 짓겠다는 발상은 국제적 우려를 낳을 것이고, 밀어붙인다면 우리나라와 인천시에 항의가 빗발칠 뿐 아니라 조롱거리로 남을 게 틀림없다. 장애인아시안게임의 상징동물이 저어새 아니었나.

 하수처리와 저어새 보전 모두 문제없는 대안을 모색해야 할 텐데, 어떤 방법이 있을까? 저어새의 산란과 서식환경을 개선하면서 하수종말처리장을 개선할 합리적 대안을 시민사회와 전문가, 인천시 당국과 충분히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싶은데,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 종말처리장으로 들어가는 하수를 어느 정도 곳곳에서 처리해 부담을 줄이는 방법을 모색하면 어떨까? 그게 가능하면 기존 하수처리장의 낡은 시설의 수선과 교체만으로 충분할 수 있고, 연수구와 남동산업단지를 깨끗하게 만들 수 있을 텐데.

 현재 법적·제도적 장치의 한계로 하수 중간처리의 시설이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시민사회가 앞장서서 행동해야 한다. 국회의원이나 시의원에게 하수 중간처리의 타당성을 알리고 상황에 맞는 제도를 만들도록 요구하는 행동이다. 시민의 허파를 위협하는 미세먼지는 빗물에만 수동적으로 맡길 수 없다. 도시 곳곳에서 적극적으로 씻어내려면 중간에서 처리한 하수가 적격이다.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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