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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성우 인하대병원 심혈관센터(심장내과) 교수
얼마 전에 80세 할머니가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차다며 심장내과 외래에 내원했다. 심전도 검사를 비롯해 몇 가지 검사들을 하고 심방세동이라는 부정맥으로 인해 이러한 증상이 생긴 것이라고 말씀 드렸다. 할머니는 질문을 하셨다. "나는 지금까지 고혈압, 당뇨병과 같은 지병도 없이 건강하게 지냈고 술, 담배도 하지 않고 골고루 음식을 잘 먹으면서 짜게 먹지도, 기름진 음식을 먹지도 않으며,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뚱뚱하지도 않은데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런 병이 생겼나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할머니, 나이 드셔서 그런 거예요." 그렇다. 심방세동은 나이 든 사람에게 생기는 치료해야 할 가장 흔한 부정맥 질환이다.

심방세동이란 심방에서 비정상적인 다수의 전기 흐름이 발생돼 정상적인 심장의 전도를 방해하는 부정맥의 일종을 말한다. 이러한 다수의 전기 흐름은 심장을 불규칙적으로 뛰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심방이 정상적인 수축을 하지 못해 가늘게 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심방세동으로 인해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게 돼 심실의 기능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두근거리는 증상과 함께 숨이 차는 것이 심부전증이다. 다른 하나는 심방 수축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심방 내에 혈액의 저류로 인한 혈전이 생성되고 이 혈전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서 뇌혈관을 막는 뇌졸중이다.

심방세동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평균연령은 75∼85세로 알려져 있으나, 더 젊은 사람들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또한 55세 이상 성인의 경우 4명 중 1명 정도가 일생 동안 심방세동이 생기는 경험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심방세동의 유병률은 1%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2015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이미 65세 이상의 고령인구 비중이 13%를 넘었으며, 2030년에 이르면 65세 이상의 고령인구 비중이 20%를 넘을 것으로 예측되며, 2060년에 이르면 65세 이상의 고령인구 비중이 40%에 육박할 것이라는 보고를 했다. 그만큼 심방세동의 빈도가 급격히 증가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상황이다.

심방세동이 생길 수 있는 위험인자들은 다양하다. 고령 이외에도 고혈압, 판막질환, 관상동맥질환, 심부전증뿐만 아니라 갑상선기능항진증, 당뇨병, 비만, 과도한 음주, 폐질환, 수면무호흡증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심방세동의 예방을 위해서는 변경이 가능한 위험인자들은 조절하는 것이 좋겠다. 조절이 가능한 위험인자들로는 ▶음주 ▶비만 ▶당뇨병 ▶수면무호흡증 ▶고혈압 등이 있다.

음주의 경우 가급적 삼가며 마시더라도 하루에 2잔 이하로 절주를 하는 것이 좋겠다. 비만한 사람의 경우 10% 이상의 체중을 감량하는 것을 권고한다. 당뇨병이 있는 사람의 경우 적극적인 약물치료 및 생활요법을 통해 당화혈색소 수치를 7% 이하로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 수면무호흡증이 있는 사람의 경우 비만할 경우 체중 감량을 권하며,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는 경우 코골이클리닉 등을 찾아 이에 대해 치료를 받는 것이 좋겠다. 고혈압이 있는 사람 역시 적극적인 약물치료 및 생활 습관 교정을 통해 수축기 혈압을 140mmHg 이하로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

요즈음 진료를 보다 보면 심방세동 환자들을 꽤 많이 접하게 된다.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숨이 차서 내원해 심전도 검사를 통해 진단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런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우연히 1차 의료기관에서 심전도 검사를 해서 진단이 돼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뇌졸중 환자의 10% 이상이 이러한 무증상의 심방세동으로 인해 생긴다는 것이다. 또한 심방세동으로 인해 뇌졸중이 생기는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서 뇌졸중이 더 심하게 생기는 경우가 많아 급성기 치료 이후에도 재발률과 사망률이 더 높다는 점이다.

국민건강검진제도에 심전도 검사가 빠져 있어 이러한 무증상 심방세동을 조기 진단할 수 없는 아쉬운 면이 있다. 65세 이상 인구를 대상으로 심전도 검사를 해 심방세동을 조기 진단, 적절한 치료를 했을 경우 뇌졸중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비용·효과적인 면에서도 우월하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전 국민 건강검진 체계가 잘 잡혀 있는 경우라면 65세 이상 노인들에게는 심전도 검사를 포함해 적은 추가 비용으로도 심방세동과 같은 심장질환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할 수 있는 제도로 정비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권성우 인하대병원 심혈관센터(심장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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