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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지도가 점점 까다로워지고 교사들의 행정업무도 늘어나면서 학생부장은 늘 ‘찬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가까이에서 지도하고 싶어 선뜻 ‘학주’가 되기를 자처한 선생님이 있다. 인천 연수여자고등학교 권혁성(44)교사다. 권 교사의 담당 과목은 주요 과목 중 하나인 수학이다.

 교과 지도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할 만하지만 권 교사는 자발적으로 학생부장을 맡아 학생 지도에 나섰다. 강화여고에서 1년, 연수여고에서 4년, 벌써 5년간 학생부장으로서 학생 지도를 담당하고 있다.

 시간이 부족한 와중에도 권 교사는 학생 지도를 위한 자체 프로그램들을 개발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권 교사가 2014년 개발해 실시하고 있는 ‘KS virus 전파하기’ 프로그램 역시 이 중 하나로, 학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KS는 ‘Kind Student’를 줄인 말입니다. 말 그대로 ‘착한 학생’ 바이러스를 퍼뜨리자는 의미에요. 아직 실질적으로 상벌점 제도가 폐지되지 않았는데, 이를 우리 학교에 맞게 보완한 프로그램입니다. 벌점이 있는 학생은 ‘멘티’, 벌점이 하나도 없는 학생은 ‘멘토’가 돼서 일정 기간 서로 학교에서 함께 생활하며 교칙을 준수하는 활동이죠. 되도록 같은 반 학생들끼리 짝을 지어 주는데, 함께 다니면서 친밀감을 높이고 교칙을 같이 지키는 것을 기대해 마련했습니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교칙을 지키도록 하는 이 활동은 곧 효과를 봤다. 이 프로그램이 진행될 때마다 참여를 원하는 학생은 100명에서 많게는 150명까지도 늘어났다. ‘멘토-멘티’가 서로 격려하며 바르게 생활해 벌점을 없애는 만큼 학생들의 성취감과 자신감도 키울 수 있도록 했다.

 "일부 학교에서는 벌점을 받은 학생들에게 교사가 개인적으로 심부름을 시켜 상점을 준다든가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교칙을 준수하지 않아서 받은 벌점인데, 다른 소일거리로 상점을 받아 없애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교칙을 잘 지키고 모범이 되는 일을 했을 때 상점을 주는 것이 진정한 상벌점 제도 아닐까요."

 권 교사가 만든 프로그램은 이 뿐만이 아니다. 세월호 등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학생들의 안전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돼 만든 ‘매듭법 교육 프로그램’도 있다. 이 프로그램은 다른 학교 학생부장들이 자료를 요청할 정도로 반응이 좋다.

 "사실 이 프로그램은 생활 지도보다는 학생들이 어떤 위험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만들었습니다. 마침 시교육청에서도 관련 강좌가 있었고요. 제가 먼저 매듭법을 익힌 뒤 학생회 임원들과 일명 선도부인 ‘학교안전지킴이’들에게 교육했습니다. 지금은 이 학생들이 각 교실에 들어가 직접 친구들에게 매듭법을 안내하고 있죠. 매듭법의 경우 강의자료가 풍부하지 않아서 학생들과 직접 PPT를 만들거나 동영상 자료를 제작했습니다. 노력한 만큼 학생들 반응이 좋아 다행이에요."

 이처럼 학생 지도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는 있지만 교육 여건상 온전히 생활 지도에만 시간을 쏟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권 교사의 경우 주요 과목인 수학을 담당하다 보니 더욱 그렇다.

 "특히 담당 과목이 수학이어서 교과 상담을 자주 하는 편이라 생활 지도 시간을 내지 못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 반대로 학교폭력 사안 등 다른 일을 처리하느라 수학 교과에 신경을 못 쓰는 경우도 있죠. 학생부장들은 수업일수를 줄이는 것이 시교육청 권장사항인데, 이것이 실제로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다른 교사들과 똑같이 수업을 하면서 남는 시간에 학생 관련 사안을 처리하다 보니 시간을 쪼개서 사용해야 할 정도입니다."

 이런 이유에서일까. 앞서 언급했듯 최근 학생부장을 자발적으로 맡으려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권 교사에 따르면 올해 고교 안전생활부장 중 ⅓ 정도가 1년 차 미만의 교사다.

 학교폭력 사안을 처리하고 학생들에게 처분을 내리는 자리다 보니 학부모들에게 직접적으로 민원을 받거나 막말을 듣기도 한다. 수업 준비나 상담 등 준비도 해야 하지만 행정업무나 생활 지도와 병행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학생들을 가까이서 지도하고 싶은 마음에 학생부장을 시작했지만 사실 흔들릴 때도 많습니다. 학생들이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지도하지만 학부모들의 원망을 들을 때면 속상할 때가 있죠. 학부모들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자녀들에게 벌점을 주는 ‘악역’으로도 비춰질 수 있으니까요. 처음 맡았던 순수한 열정이 지속되려면 행정적이나 다른 면에서 지원이 뒷받침되는 것은 물론 학부모들의 인식 개선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잘 되라는 마음에서 지도한다는 것을 조금은 알아주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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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교사에게 ‘순수한 열정’을 준 학생은 이전 학교인 강화여고의 한 학생이다. 가정 형편이 어렵다 보니 성적이 웬만큼 나오면서도 스스로 대학 진학을 포기한 학생이었다. 공부 외에 다른 것을 신경쓰게 되자 성적은 매년 떨어졌고, 성적이 더욱 안 좋아졌던 고등학교 3학년, 권 교사를 담임으로 만났다.

 "가정 형편 때문에 ‘나는 대학에 못 갈거야’라고 지레짐작으로 포기한 것이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장학금 등 대학을 다닐 수 있는 방법은 많으니 일단 대학에 진학했으면 한다고 마음을 터놓고 얘기했죠. 효과가 있었는지 3학년 때 늦게나마 함께 노력했고, 당시 처음 생긴 지역우수인재 전형으로 서울 소재의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여기서 얻은 보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죠. 지금도 종종 연락하는데 항상 잘 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처럼 권 교사는 학생 지도에 있어서 학생들과의 ‘대화’와 ‘이해’를 중요시한다. 예전에는 선생님들의 지도에 학생들이 따라야 했지만, 요즘에는 학생들이 마음속으로 충분히 이해되지 않으면 선생님의 말을 수긍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권 교사의 모습을 반영하듯 선생님의 별명은 ‘슈퍼 마리오’다. 외형적으로 ‘닮아서’라는 단순한 이유지만, 그 속으로는 권 선생님에 대한 친근함을 표현하는 학생들의 애정 어린 별명이다.

 "학생들과는 즉시 마음을 표현하고 화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부분이든 학생들이 상처를 받았을 때 진솔하게 서로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특히 여고생들은 마음을 다치기 쉽기 때문에 제가 바로 신경쓰지 못하면 마음의 상처로 어느새 학생과의 거리가 많이 벌어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학생을 지도할 때 가급적 학생들의 얘기를 많이 들어주려 노력하는 편입니다."

 최근 권 교사는 상벌점 제도가 폐지된 뒤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교칙 준수 프로그램을 고안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수학 역시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에 기초가 부족한 학생들을 위한 교육법도 마련 중이다.

 요즘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만큼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는 그는 "가능한 한 오래도록 학생들 곁에서 지도할 수 있는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다"며 ‘학주’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다.

#선생님 질문있습니다

 Q.평소 학생들에게는 어떤 교사인가요.

 ▶동네 아저씨처럼 친근하고 때론 개그맨 못지않게 웃긴 교사 아닐까요.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만 내세우는 학생들에겐 무서운 교사이고 싶어요. 그런데 별명이 ‘슈퍼 마리오’라…. 이왕이면 원빈처럼 길쭉하고 잘생긴 연예인이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Q.취미는 무엇인가요.

 ▶학생들 생각하고 걱정하기요. 진짭니다. 직접 만든 프로그램의 경우도 처음 만들었을 때보다 이를 계속 유지시켜 나가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고민이 많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수학은 기초가 부족하면 진도를 따라오기가 어렵기 때문에 학생들이 수업에 잘 따라올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연구 중입니다.

 Q.학창시절 기억에 남는 교사는 누구인가요.

 ▶두 분이 있는데요. 고등학생 때 한문 교과를 가르쳐 주셨던 이계송 스승이 제가 현재 생활지도를 하는 데 ‘롤모델’이 된 분입니다. 제가 학창시절 명절 빼고는 혼자 학교에 나가 자율학습을 했거든요. 그때 스승님이 제 등을 두드리면서 "열심히 하네. 뭐라도 되겠구나"라고 말하고 가셨는데, 그게 그렇게 기억에 남더라고요. 수학 교사로서는 고등학교 때 수학을 가르쳐 주셨던 김익경 스승이요. ‘저 분처럼 가르치고 싶다’고 느껴 항상 노력했습니다.

 Q.학창시절은 어땠나요.

 ▶친구들과는 장난도 치고 떠들었지만 스승님들에게는 소극적이고 질문도 잘 안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김익경 스승을 따라하려다 보니 수학을 좋아하게 됐고 이렇게 교사까지 됐네요.

김희연 기자 khy@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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