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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식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인천에 여성 전문의원이 개원해 진료를 시작한 것은 1921년 7월 5일이다. 미국 감리교여성해외선교부 소속 여의사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에 의해 중구 율목동 237번지에 부인병원이 개설되면서였다.(율목동 237번지는 현 기독병원의 위치이다.)

이 부인병원 소식은 개원 전날인 7월 4일자 동아일보가 예고한다. "미국 부인전도회에서는 일찍이 여의를 조선에 파견하여 평양에는 광혜여의원, 경성에는 동대문부인병원을 세워 일반부인 환자를 치료하더니 이번에는 다시 인천 율목리 이백삼십칠 번지에 부인병원을 신설하고 명 오일부터 진찰을 할 터인데 여의계의 유명한 ‘홀’ 부인이 감독이 되고 조선 여자의사 두 명이 보조하리라더라."는 것이 기사 전문이다.

그리고는 약 4개월쯤 뒤인 10월 30일자 동아일보가 다시 같은 달 26일에 거행된 부인병원 개원식 기사를 내보낸다. 개원 초기에는 경황이 없어 미처 식을 가지지 못하다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후인 이날 비로소 개원식을 거행했던 것 같다. 오후 2시부터 3시 반까지 개원식에 이어 피로연까지 진행됐다고 하는데, 이날 기사에는 먼저 예고 기사보다 병원 관련 내용이 좀 더 자세하게 나와 있다.

먼저 홀 부인의 율목리 부인병원은 당시 돈 5천 원(圓) 상당의 가옥(1928년 간행된 한국선교연보에는 ‘한국식 여관’을 샀다는 기록이 있다. 또 당시 토지대장도 1921년 6월 18일 율목동 237번지가 R. S. Hall에게로 소유권이 이전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한 채였다는 내용과 조선 여자의사로는 총독부 의학교를 나와 평양에서 개업의로 있으면서 ‘부인 사회에 다대한 편의를 보급하던 김영흥(金英興) 여의사와 일본인으로 보이는 하락(賀樂) 부인이 원장으로서 ‘병원의 설립 취지와 장래 방침을 설명’했다는 내용이다.

기사 중에 특이한 것은 감리교 목사로 또 독립운동가로 크게 활동했던 오기선(吳基善) 감리사가 개회사를 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1921년 동경한인교회 담임 목사로 부임해 있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들에 의해 한국인 피살사건이 벌어지자 재해동포위문단을 조직해 본국 교회와 연관을 맺고 우리 동포들을 구호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아무튼 홀 부인이 서울과 평양보다는 훨씬 늦게나마 인천에 부인병원을 세우기로 결심한 것은 여성들이 말 못하고 감내할 질병의 위험성 때문이었다. 그녀는 우리나라 여성들이 같은 문중의 남성이라 할지라도 촌수가 먼 경우에는 상면을 하지 않을 정도로 극심한 남녀의 분별 관념 때문에 웬만큼 병세가 위중하지 않으면 결코 남자 의사에게 진찰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1891년 10월(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는 1890년 10월로 기록돼 있다.)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홀 부인은 "처음 10개월 동안에 무려 2천350명의 여자 환자를 치료했고 그 밖에 82명에 대해 왕진을 실시했으며 35명을 입원 치료하게 하는 등 정열적인 활동을 했다"는 기록을 보아도 당시 우리 여성들의 남성 의사 기피 실정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정황으로 미뤄 홀 부인은 여성전문 병원의 설립이나 여성 의료 인력의 필요성을 특히나 절감했던 것 같다. 그녀가 내한 2년 만에 ‘여성을 위한 의료사업은 여성의 손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이화학당 학생 4명과 일본 여성 1명으로 의학훈련반을 조직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의학교육을 실시한 사실이 그 증명일 것이다.

홀 부인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지난 6월 13일 중구 용동 117번지에 문을 연 이길여산부인과기념관 개관이 떠오른다.

 이 기념관은 1958년 이길여 원장이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병원 문턱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이들을 살릴 수 있는 의사로서의 길"을 걸을 것을 다짐하고 개원했던 당시 이길여산부인과의원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이길여산부인과는 박애, 봉사의 정신을 바탕으로 이제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공익재단인 가천길병원으로 우뚝 섰다. 홀 부인의 부인병원이 훗날 기독병원 설립의 밀알이었음과 비슷하다. 벽안의 여의가 시작한 인천 여성전문 의료 역사의 맥이 이렇게 길병원으로도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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