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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우 고려대 교수

사회과학을 전공해 정치학자로 살아온 나로서는 그동안 우리 사회의 현실문제에 대한 진단과 이를 풀기 위한 도전의 과정 속에서 비교적 많은 좌절과 아픔을 안고 살아왔다.

그냥 대학의 강단에서 순수한 정치학자의 삶을 살았어도, 평생이 보장된 외교관의 신분으로 공직생활을 했었다면 조금 더 편하고 안락한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 문득 나의 서재에 있는 15년 전에 발간된 나의 처녀시집을 꺼내서 보다가 내가 망각하고 있는 중요한 보검과 같은 것을 다시 한 번 발견하게 됐다.

 어린 시절 문학소년을 꿈꾸면서 많은 습작을 하던 습성이 2000년도에 詩人(시인)으로 등단하는 과정을 일궜지만, 순수한 문학의 아름다움과 현실사회의 改革(개혁)이라는 과제를 놓고 필자는 항상 많은 고민을 해 온 기억이 새롭다.

 지금까지 단독으로 7권의 시집을 출간하면서 나름 그 시절마다의 정서를 담고 시대상을 짧은 언어 속에 그리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당신이 날 부르면」이라는 처녀시집에 쓰여진 나의 인사말 속에는 지금 내가 분단국가의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책무와 시대정신을 일깨우는 나의 망각 속의 언어가 있었다. ‘詩人(시인)의 말’에 담긴 당시의 나의 談論(담론)은 茶山(다산)선생의 愛民(애민)·愛國(애국)정신에 대한 실천적 삶이었다는 생각이다. 15년 전이니 지금보다는 더 도전적이고 더 패기 있는 실천적 지식인이 되려고 노력한 흔적을 이 시집에서 새삼스럽게 만난 것이다.

 그 이후 현실사회가 나에게 많은 실망감을 준 것도 사실이고, 좌절 의식을 극복하는 치열한 노력과 방황 그리고 용기 있는 재도전 등이 지금까지의 나의 삶을 일군 주요한 동력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자랑할 것도 없는 그런 과정이지만 말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조선시대의 사상을 집대성해 공자사상의 修己(수기)정신에서 한참이나 올라 治人(치인)의 각성을 촉구한 勇氣(용기)까지 수용한 것을 실학의 泰斗(태두)라 여기면서 21세기 분단국가에서의 진정한 지식인의 용기는 무엇인가라는 큰 질문을 해 보는 것이다.

 내가 그동안 쓴 수많은 詩(시)들이 내가 15년 전에 장담했듯이 나를 젊게 해 왔는가, 나의 소신을 지키게 했는지, 지금도 나를 제한하는 구속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때로는 나약한 나를 지켜주는 절대중심의 思想(사상)이 되고 있는 것인지 지금 자문해 보는 것이다.

그냥 학자로서, 외무관료로의 안정적으로 보장된 길을 던지고 한국사회의 개혁을 일구는 리더를 꿈꾸면서 현실의 벽 앞에서 3번이나 좌절하면서도 상처투성이의 몸을 이끌고 오늘 대한민국의 담론을 일구는 원동력을 제공하는 그 근원이, 지금 보니 이렇게 나의 잠재의식 속에 내재된 깊은 詩心(시심)에 있다는 깨달음을 다시 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나의 삶을 돌아보니, 나의 삶은 보통 사람들의 삶보다 더 도전적이고 더 고민하는 모습이다. 실천하는 지식인이라는 큰 명분을 위안 삼아서 대한민국이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더욱더 정진하면서 잘못된 시대정신과 싸우고, 통일선진 대한민국을 이루는 원대한 꿈을 위해 남은 삶도 더욱더 열심히 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나에게 스스로 던지는 의무이자 소망인 것이다. 끝으로, 수많은 나의 시들 중에서 내가 지금도 아끼는 시를 하나 소개한다.

 #당신이 날 부르면(1999년 10월 작)

 당신이 날 부르면 나는 그곳으로 달려갈 것이오. 솔잎 흩날리는 가을 바람에 당신의 숨결을 담은 미소가 나를 부르면 나는 나는 그곳으로 달려갈 것이오. 내가 당신을 부르면 당신은 내게로 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오. 당신은 가을의 맑은 공기와 자연의 숨결에 젖어 나를 유혹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지만 나는 인간들의 탐욕, 위선 갈등의 악보를 벗어나서 당신을 초대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오.

 당신이 날 부르는 소리에 가까이 가보니 훠어이 훠어이 솔바람 잔디바람 속에 향긋한 백녀향의 미소를 머금고 서서 분홍의 빨강의 옷을 입고 갈기 갈기 겉옷을 찢어 날리는 야한 감나무가 아니오. 나를 부르시오. 나도 당신의 꿈속에서 그대의 숨결에 고이 고이 꿈꾸고 싶소이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부를 수가 없으니 이 어이 슬픈 일이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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