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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현린 주필
「장자(莊子)」에 ‘목계지덕(木鷄之德)’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 주(周)나라에 기성자라는 싸움닭을 전문으로 훈련시키는 조련사가 있었다. 투계(鬪鷄)를 몹시 좋아하는 왕이 이 이야기를 듣고 싸움닭을 기르도록 했다.

열흘 만에 왕이 묻기를 "싸울 만한 닭이 되었는가?"하므로 조련사는 대답하기를 "아직 멀었습니다. 지금 건성으로 사나운 척하며 제 기운만 믿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열흘이 지나 왕이 또 물으므로 "아직도 멀었습니다. 다른 닭의 소리만 듣거나 모양만 보아도 덤비려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또다시 열흘이 지나자 왕은 답답한 나머지 같은 물음을 되풀이했다. "아직도 안 됐습니다. 다른 닭을 보면 눈을 흘기고 기운을 뽐내어 여전히 투지가 넘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닭싸움을 빨리 보고 싶은 왕이 또 열흘이 지나 물으니 "이젠 됐습니다"하고 시원한 대답이 나왔다. 왕이 이유를 물은 즉 "다른 닭이 덤벼도 조금도 태도를 변치 않습니다. 바라볼 때 마치 나무로 만든 닭과 같으니, 비로소 닭으로서의 덕을 온전히 갖췄습니다(望之似木鷄矣, 其德全矣)."

 어렸을 적이다. 옆집 동무네 닭과 우리 닭이 싸웠다. 벼슬이 시뻘건 장닭이었다. 나와 친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기네 닭이 상대 닭 부리에 쪼여 피를 흘리면 집으로 데려가 매운 고추장을 먹여 다시 싸움을 시키곤 했던 추억이 있다. 매운 것을 먹이면 닭이 사나워진다고 믿었던 당시의 아이들이었다.

 국회는 투계장(鬪鷄場)이 아니다. 국민을 위해 좋은 정치를 하는 곳이다. 고성과 막말이 오가는 국회가 어떻게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는 말인가. 국회 개원식이 지난달 13일 오전이었으니 아직 한 달도 채 안 됐다. 20대 국회의원들은 이날 국회법에 따라 다음과 같은 선서를 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가 그것이었다.

 선서문의 잉크도 마르지 않았다. 기대와 희망 속에 출범한 20대 국회의 첫 임시국회가 지난 6일 종료됐다. 출범 초기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20대 국회다. 출범과 동시에 일부 국회의원들이 각종 비리 혐의로 검찰에 의해 구속영장이 청구되는가하면 당권 주도 경쟁으로 단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본연의 국회상은 보이지 않고 있다. 개원 초장부터 의무는 망각하고 특권의식만 내세우려 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에 국민은 실망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우리헌법 제11조 중 일부다. 조문과 달리 실상은 평등하지 않고, 신분에 따라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표적인 신분이 ‘국회의원’이라 할 수 있다.

특권계급이 엄존하고 있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은 내려놓고 특권만 지고 가려 하는 국회다. 무거운 짐이라면 앞을 다퉈 내려놓았을 국회다.

특권이기에 내려놓기를 주저하고 있다. 헌법조차 무시하는 국회가 하위 법령을 지킬 리 만무하다. 우리 법은 국회의원에게 수많은 특권을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의무는 고작해야 헌법 제46조의 ‘국회의원은 청렴의 의무가 있다’가 그것이다. 이 외에 동조 2항과 3항의 ‘국익우선 의무’와 ‘지위남용 금지 의무’가 있고, 국회법의 "의원은 의원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여야 한다"라는 품위 유지의 의무가 전부인 듯하다. 우리 국회가 여전히 구태에 머무르고 쇄신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정치는 희망이 없다.

 신분과 직함에 따라 무게를 알아야 하겠다. 법조인은 법복의 무게를, 군인은 군복의 무게를 알아야 하듯이, 국회의원은 금배지의 무게를 알라. 이번 20대 국회는 역대 최악의 국회로 낙인 찍힌 19대 ‘국해(國害)’보다는 좀 나아졌으면 하는 것이 시민들의 바람이다. ‘20대 국회, 너마저…!’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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