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먹방’이 대세였다. TV를 틀면 늘 나왔다. 유명 셰프가 나와 직접 요리를 시연한다. 물론 레시피도 알려 준다. 지금도 일부 방송에선 여전히 먹방 프로그램이 인기다. 최근에는 먹방이 ‘한물갔다’는 얘기도 들린다.

 오히려 건강 프로그램이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인생 100세 시대’ 활기찬 노후를 즐기기 위해 음식도 건강식을 챙긴다. 그래서인지 몸에 좋은 건강식이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 ‘밥이 보약’이라는 옛말도 이젠 새롭게 들린다. 몸과 마음에 좋은 음식이 부각되다 보니 그렇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요리사로 ‘제2의 인생’을 택한 부부가 있어 눈길을 끈다. 이천시 신둔면 지석리 원적산 아랫자락에 터를 잡은 ‘안옥화 음식갤러리’를 운영하는 잉꼬부부가 그 주인공이다. 정년을 5∼6년 남기고 미련 없이 근무하던 학교를 그만두고 요리를 만들며 인생을 즐겁게 살고 있다. 부인 역시 친정어머니의 맛을 그대로 이어받아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갤러리를 찾는 고객들에게 정성껏 선뵈고 있다. 몸에 좋은 발효 약선 음식을 만들고 있는 탁용일(55)·안옥화(47)부부를 만나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 산자락에 둥지 튼 ‘안옥화 음식갤러리’

7-1.jpg
탁용일·안옥화 부부가 직접 만든 발효액 장독을 열어보고 있다.
이천시내에서 승용차로 10여 분간 가다 보면 겉으로 보기에 평범한 가정집이 보인다. 이곳 마당에 들어서면 우선 가지런히 놓여진 항아리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항아리들은 시골 풍경을 재현한 장식용이 아니라 ‘안옥화 음식갤러리’에서 없어서는 안 될 다양한 발효액이 담겨 있다. 탁 씨 부부의 ‘보물 창고’다.

현관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가자 인자한 미소를 짓는 안옥화 대표의 모습이 눈에 띈다.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은 아들을 맞이하는 어머니 같은 느낌이 들어 내 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다. 실내에는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큰 창과 이름 모를 발효액이 담긴 100여 개의 병들이 진열돼 있다. 조용한 산속 전시장을 연상케 한다.

‘안옥화 음식갤러리’에는 5년에서부터 10년 이상 된 도라지와 엉겅퀴, 구절초, 돼지감자, 복분자, 초석잠, 천년초, 백년초, 달맞이, 산야초 등 다양한 발효액들이 즐비하다. 깔끔한 주방과 흰색 복장의 탁 선생 모습에서는 학생을 가르치던 교사의 이미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특급호텔 요리사의 ‘포스’가 느껴진다. 음식갤러리 대표인 부인 안옥화 씨는 15년 전부터 어린 시절 친정어머니가 음식을 만들 때 사용했던 발효액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연구해 왔다.

그러던 중 지난해 초 친정어머니에게 배운 좋은 음식들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눠 먹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음식점을 차릴 생각을 했다고 한다. 다양한 종류의 발효 약선 음식을 만들어 조금이라도 고객의 몸에 더 좋은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1년이라는 기간을 두고 차근차근 준비했다.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니 혼자 음식점을 운영하기에는 너무 벅차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30여 년간 학생들만 가르쳤던 탁 씨에게 같이 일을 하자고 얘기하기는 버거웠다. 안 씨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같이 음식점을 해 보는 것은 어떻겠느냐며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니 주방에서 요리를 하면서 도와 달라(?)고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얘기를 건넸다. 탁 씨는 순간 아내의 말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아내에게 얘기하고 학교로 향했다. 막상 학교에 와서도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탁 씨는 전한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고민한 끝에 탁 씨는 퇴근시간이 되자 서둘러 집으로 왔다. 도착하자마자 아내에게 "학교를 그만두고 주방장으로 ‘제2의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다. 우리 함께 좋은 음식을 만들어 새로운 음식문화를 만들어 보자"고 했단다. 이 말을 들은 안 대표는 너무 기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흘렀다고 한다. 탁 씨는 안옥화 음식갤러리 탄생의 숨은 이야기를 이같이 전했다.

 탁 씨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100세 시대를 맞아 내가 정성스레 만든 발효액들을 이용해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돕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서 30여 년간 정들었던 학교를 떠나게 됐다"고 회상한다.

7-2.jpg

# 물 좋고 산수 좋은 ‘안옥화 음식갤러리’에서 건강을 챙기다

올해 초 개업한 안옥화 음식갤러리는 문전성시다. 입소문이 나면서 늘 많은 손님들로 붐비고 있다. 이들 부부는 즐겁다. 이곳은 지역 내 기업을 찾는 외국 손님들에게 한국의 고유 음식을 소개하기 위해 찾는 경우가 많다. 최소한 하루이틀 전에는 예약을 해야만 이들 부부의 손맛을 느낄 수 있다.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있으면 불편하지 않느냐고 지인들이 묻지만 아내와 함께 있는 것이 매우 행복하다며 미소를 짓는 탁 씨. 고객들이 음식을 먹고 나면 행복해하는 것을 자주 본다며 이것이 ‘인생의 행복’이라고 말한다.

이곳의 재료 또한 훌륭하다. 부부의 정성이 고객들에게 전해지고 있어서다. 갤러리는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안전한 먹거리를 고객들이 보다 편안하게 먹고, 정성을 다하기 위해 예약을 받아 운영한다. 몸과 마음에 좋은 음식이면 그 이상 좋을 게 없다는 게 부부의 생각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최고의 쌀로 인정받은 이천쌀을 이용해 곡주도 만들고, 직접 재배한 아로니아와 민들레, 당귀, 매실, 우슬 등을 이용한다. 부족한 농산물은 신선한 재료를 판매하는 이천 로컬푸드에서만 구입해 사용한다.

‘안옥화 음식갤러리’ 상차림은 산과 들에서 채취한 제철 산약초로 담근 발효액과 전통장으로 이천 농·특산물의 식감과 영양을 눈으로 즐기고 맛볼 수 있다. 발효 약선 음식을 주제로 약선 한정식과 제철 버섯, 약초로 우려낸 육수로 끓여낸 산야초전골, 약초 육수에 토종닭과 각종 해산물로 궁합을 맞춘 약선탕 등이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갤러리가 있는 ‘지석리’는 고인돌(지석묘)이 많이 남아 있어 붙은 지명으로, 주변에 해강도자기박물관, 산수유마을 등이 있어 경관 또한 뛰어나다. 안옥화 대표는 "식약동원(食藥同原·음식과 약은 같은 근원이다)을 실현하기 위해 정성스레 직접 담근 발효액과 전통장으로 이천 농·특산물의 식감과 영양을 눈으로 즐길 수 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미술관 같은 음식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