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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식<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시인>
우리 인천시가 곧 있어 인구 300만 시대를 맞게 된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인구수가 299만2천 명으로 다음 달 중순 이후에는 3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며, 이에 대비해 인천시도 조직 강화 등 본격적인 채비에 들어갔다고 한다. 인구 300만이 되면 대구를 제치고 서울, 부산에 이어 대한민국 3대 도시가 된다.

인천 인구에 대한 연구서는 2007년 인천학연구원에서 낸 「인천인구사」가 있다. 이 책은 개항 시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천의 인구 변화를 다루고 있다. 공간적으로는 1883년의 개항지 인구부터 이후 행정구역 개편에 따른 전 인천의 인구 변동을 연구한 보고서이다.

일본인들은 1883년 개항 당년의 개항지 인구를 348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조선인은 물론이고 그 당시 인천에 와 있던 서구인들은 제외한 저들만의 인구수였다. 중국인은 이듬해인 1884년에 136명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반해 조선인에 대해서는 1895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수를 4천728명으로 기록한다.

이것으로 미루어 인천의 조선인 인구는 이미 개항 당시부터 천 명 단위 이상에 육박할 것으로 이 책은 추정하고 있다.

 아무튼 인천 인구 이야기는 1895년의 4천728명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앞서 "개항 당시부터 천 명 단위 이상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한 인천의 조선인 인구가 12년 만에 3~4배 증가한 것은 제물포가 부산을 훨씬 능가하는 대무역항으로 부각되면서 각지에서 많은 인구가 유입된 결과라고 할 것이다.

고 신태범(愼兌範) 박사의 저서 「개항 후의 인천 풍경」에 그 같은 사정이 자세히 언급돼 있다. "당시 농촌은 몹시 피폐했고 임오군란, 갑신정변, 그리고 동학의 발단으로 민심마저 흉흉했다. 따라서 고향을 등져야 할 사람이 적지 않았다. <중략> 얼마든지 일자리가 있고 품값은 그날그날 맞돈으로 주는 제물포를 꿈 같은 신천지로 알고 모여들었을 것이다."

 이 같은 인구 유입 추세는 이어져 1910년에 이르러서는 인천의 조선인 인구가 1만4천820명에 이른다. 일본인도 1895년 4천148명에서 1만3천315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참고로 이해 중국인은 2천806명, 기타 외국인은 70명이었다. 1931년에 와서는 인천의 조선인 인구가 5만1천5명으로 크게 증가한다. 인천부가 조사한 1933년의 인천의 총 인구는 7만2천860명으로 조선인 인구는 약 8천300명가량 늘어난 5만9천321명에 이른다. 1934년 인천부는 장래 인천 인구를 30만으로 잡고 현 신흥동 주변 해안 19만8천여㎡ 매립 7개년 계획을 세운다.

1934년 2월 2일자 동아일보는 그에 대해 "장래 대경성의 문화도시로 30만 인구를 수용할 대공업도시를 꿈꾸는 인천" 운운하며 맞장구를 치고 있다. 「삼천리」잡지 1935년 1월호는 전년 각 도시의 인구를 만 명 단위로 끊어 "경성 40만, 부산 15만, 평양 14만, 대구 10만, 인천 7만, 신의주 5만, 함흥 4만" 등으로 나열하면서 인천을 국내 5대 도시로 표기한다. 1939년 인천 인구 10만1천80명, 이어 1940년 10월 1일 기준 17만1천165명으로 1년 사이 7만 이상 늘어난다.

이 같은 인천의 두드러진 인구 증가는 1936년 부천군 다주면 지역을 시작으로 해서 1940년 부천군 문학면 지역 일부와 부평의 일부 지역을 부역으로 포함했기 때문이다. 1944년 인천의 총 인구는 21만3천833명, 그 중 조선인 인구는 19만140명이다. 대한민국 건국 초기인 1949년 인구는 26만5천767명으로 여전히 큰 폭의 집중 현상을 보인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인 1955년 인천 인구는 31만7천967명으로, 1934년에 일제가 꿈꾸었던 인천 인구 30만을 이제 비로소 돌파한다. 인천 인구가 40만을 넘어선 것은 1960년이다. 오늘 인구 30만을 넘어선 1955년으로부터 61년이 지난 2016년, 인천은 300만 인구의 우리나라 3대 도시를 향해 큰 발걸음을 한다. 과거 언론은 인구가 격증할 때마다 영세민 주택, 의료, 교육 등 사회 기반 시설에 대한 염려를 표시하곤 했다. 그 밖에도 "이리하여 인천은 끝내 인천 사람이 없는 인천으로 성장하게 된다"고 했던 신태범 박사의 지적도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의미 깊게 새겨야 한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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