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했던 대로다. ‘자유로운 제로(Free Zero)’라는 전시를 열고 있는 박윤주(30)작가에게 만남을 청하자마자 선뜻 인터뷰에 응했다. 보통은 사전 질의서를 달라 등의 요구나 격식을 차리는 경우가 많은데 역시나 자유로운 영혼다웠다.

7일 끝난 인천아트플랫폼 개인전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나와 너를 지배하고 있는 이념과 기준의 무게감’을 표현한 다수의 설치미술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었다.

무거운 이론과 이념을 버리고 온전히 나(주체)의 사건과 감각을 신뢰해 ‘자유로운 제로’가 되고 싶다고 한 작가의 생각이 궁금했다.

"결혼해야 한다, 애를 낳아야 한다 등도 어쩌면 내 생각이 아닌 남의 생각이 제 몸에 흡수·주입된 이념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나다운 생각과 생활을 가지려면 일단 완전 텅 빈 제로 상태로 가 봐야 한다는 느낌이에요."

이런 생각을 20대 중반의 자기 모습에서 찾았다고 했다. "사람들 앞에서 어떤 위대한 사람과 이념을 바탕으로 격정적으로 얘기하고 토론·설득하는 모습에서 어느 한순간 내 거 아닌 것으로 나를 포장하고 있는 부끄러운 작은 자를 봤다고 할까요?"

그녀는 ‘비움’을 한 비디오 작품으로 보여 줬다. 연합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돼 전쟁의 비극을 상징하는 독일 드레스덴 성모교회에서 지난 6월 진행한 퍼포먼스였다.

"할아버지의 낡은 여행가방에 잔뜩 물건을 채워 놓고 성당 계단을 올라가며 내동댕이치는 모습을 연출했어요.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것이 성장을 의미한다면, 물건을 버리는 행위는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비워 원점에서 출발하자는 뜻이에요."

다른 작품들도 ‘삶의 무게’, ‘진리와 착각’ 등에 대한 그녀의 뚜렷한 개성을 보여 준다.

그런데 박 작가는 왜 이렇게 자신을 비우는 데 집착하는 걸까? 보통은 30세가 될 때까지, 마음이 확고해 중심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립(而立)의 경지에 오르기를 바라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작가 노트 중 한 글귀가 이에 대한 답이다. "외부의 기준(이론과 이념)을 내 것으로 삼아 살아도 된다는 착각이었다. 그걸 당연시했기에 삶이 무리였고 문제였다."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2015년 입주작가인 그녀는 이번 전시가 끝나면 독일 베를린에 있는 레지던시 기관(ZK/U)으로 돌아가 똑같은 전시를 연다. 지금 당장은 지상(현실적 삶)에서 멀어질수록 비현실이 되는 대신 자유롭고 가벼워지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비움 다음에 결국엔 나만의 길을 찾지 않을까요? 아니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나 계속 삶의 완성도를 위해 노력하겠죠."

김경일 기자 kik@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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