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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용 변호사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김소월의 ‘산유화’라는 잘 알려진 시(詩)이다. 흔히 위 산유화를 가리켜 김소월의 철학적 면모를 보여준 시라고 말하기도 한다. 산에서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외롭게 피어 있고, 이는 마치 작가 김소월의 모습이기도 하고, 우리 존재의 한 모습, 실존(實存)이기도 하다. 이렇듯 시는 우리 인생을 노래하는 것이다.

 우선 시(詩)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를 보면, 정서나 사상 따위를 운율을 지닌 함축적 언어로 표현한 문학의 한 갈래라고 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내용적으로는 정서나 사상 등이 들어 있고, 형식적으로는 운율(음악성)을 띤 함축적 언어로 표현된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길, 먼 전라도 길]

 한하운 시인의 ‘전라도 길(소록도로 가는 길에)’이라는 시다. 한하운은 요즘 말로 한센병에 걸린 시인인데, 평생을 천형(天刑)으로 인한 고통과 절망, 그리고 구원을 바라는 마음으로 시를 썼다. 이렇듯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를 쓴 시인, 작가의 인생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럴 때 그 시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시는 시를 쓰는 작가, 시인의 생각과 의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인의 생각과 의도는 그의 인생살이 만큼이나 깊어진다. 그의 인생의 깊이와 폭에 따라 그의 시의 생명력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감히 시를 쓰기가 겁이 날 때도 있는 것이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너에게 묻는다’라는 안도현 시인의 잘 알려진 시(詩)이다. 도발적인 표현, 그러면서 나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한마디, 시인은 그렇게 자신을 던져서 사회를 향해 외친다. 연탄재만도 못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문득 눈을 들어/ 쳐다 보니// 그리운 얼굴/ 잊지 않고// 또 찾아왔구나…]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차문을 열고 문득 쳐다 본 가을 하늘, 그리고 그 가을 하늘에서 찾은 그리운 얼굴, 그렇게 가을 하늘은 나에게 그리움을 물씬 던져주었다. ‘가을 하늘’이라는 나의 졸시(拙詩)이다.

 그래서, 시(詩)는 함축적인 언어로 표현되고 그 속에 사상과 정서가 녹아들어 있으며, 읽으면 읽을수록 노래가 되는 운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겨울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그덕이며 끄덕이며 겨울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김남조 시인의 ‘겨울 바다’이다. 슬픔을 달래려 가 본 겨울 바다에는 허무의 불만 일렁이고, 깊은 관조의 시간 속에 자신을 파묻고 기다린 겨울 바다에서 결국 배운 것은 고통을 이겨내는 인내심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구체적으로 우리네 일상 삶을 노래한 시도 있다. 정희성 시인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본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어느 날 지하철을 타러 갔다가 한없이 내려간 적이 있다. 그래서 이렇게 적었다.

 [요즘 지하철은 참/ 깊다// 설마 지하철이 속이 깊어서/ 그리하진 않을 게다// 한참 계단을 내려가도/ 기차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내려가 차분히/ 기다리면// 그 기차가/ 온다// 나도 그렇다// 요즘은 참 깊다// 설마 내가 속이 깊어선/ 더 더욱 아니다// 그냥 한없이 내려가/ 나를 좀 기다리다/ 보면// 그때 내가 온다// 그렇게 나는/ 나를 만난다// 저 깊은 지하철 역에서…] 김재용 ‘지하철 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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