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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한국에 대한 중국의 대응이 심상치 않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 아직은 관영매체를 중심으로 한 겁주기에 머무르고 있지만 조만간 구체적인 제재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해지면서 특히 한류를 비롯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한국 전체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수천 년간 일본만큼이나 우리를 고통스럽고 힘겹게 한 민족이었다. 한민족의 역사는 국력과 문화적 역량을 무기로 한 중국의 압박에 대한 시달림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는 한족과의 전쟁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고 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당나라를 완벽하게 격파해 우리 땅에서 내쫓은 전력도 있지만 중국은 조선에 사대의 원조 민족이었고 한반도의 통일을 방해한 결정적인 국가였다. 아무리 한국이 중국과 경제적 협력을 강화하고 문화적 교류를 확대해도 중국은 여전히 북한의 맹방이다. 남북한에 전쟁이 발발하면 중국은 북한을 지원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설 국가이지 남한이 북한을 막는데 도움을 줄 국가가 절대로 아니다.

지금까지 중국은 핵무기와 각종 미사일을 개발해 이를 실전에 배치하고 남한에 대한 위협과 긴장을 극대화하는 북한의 행태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아 왔으며 사드 문제와 무관하게 앞으로도 이런 기조에는 변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는 주장하면서도 북한 비핵화를 공식적으로 천명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여기에 남한의 핵개발 억제는 미국 손에 맡기고 북한의 핵개발은 방조해온 혐의가 짙다.

그래서 북한의 핵문제를 대화로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6자회담의 함정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아무리 북한을 설득하고 달래도 절대로 북한 정권이 포기할 수 없는 것이 핵과 미사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은 세계 10대 군사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이 순위가 무색하게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독자적으로 막을 수 없는 국가이다. 미국의 압력에 의해 한국 정부가 미사일 사정거리를 철저하게 통제받는 동안 북한은 전혀 중국의 간섭 없이 마음껏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 왔다. 미국은 앞으로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한민국의 핵무기 개발을 엄격하게 금지할 것이다.

 사드 레이더가 중국 감시용이라고 중국이 아무리 의심하고 억지를 부려도 한국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물론 사드로 북한의 핵미사일을 완전히 요격할 수는 없지만 그래서 실효성이 제한적인 측면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이 방어 장치 외에는 우리가 북한의 미사일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은 변변치 않다.

 만일 사드 배치가 철회되면 한미동맹은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치달을 것이다. 북한의 유일한 우방은 중국이듯이 전세계에서 한국의 유일한 동맹국은 미국이다. 미국과의 동맹에는 미국의 군사적 이익도 걸려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한국의 안보적 이익도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드 배치는 한국에 단순한 전략적 이익이 아니라 국가의 존망이 걸려있는 사활적 문제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조차도 중국은 대국에 걸맞지 않게 과도하게 자국의 이익에 집착하는 국가임을 눈치채고 끝내 중국을 믿지 않았다. 중국은 지금까지 힘으로 주변 약소국을 윽박지르고 집요하게 자신들의 영향력을 극대화시켜 왔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행태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2000년 한국 정부가 중국산 마늘에 대한 수입 제한 조치로 관세를 대폭 올린 것에 대해 한국의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 수입을 금지하는 막무가내식 무역 보복을 일삼았던 국가가 G2국 중국이다. 다른 나라의 앞바다에서 자국의 어선이 어종의 씨를 말려도 못본 척 나몰라라 하는 국가 또한 초강대국 중국이다.

일본의 기술과 중국의 시장으로 성장한 한국 경제에 중국은 장차 큰 위기이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만 여전히 기회이자 디딤돌이다. 기회는 단독으로 얻으면 되지만 군사적·안보적 위기는 당분간 미국과 함께 극복할 수밖에 없다. 중국과의 이른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또한 굳건한 한미동맹의 토대 위에서 비로소 가능하다. 미국과 중국에 대한 한국의 사대(事大)는 경제, 군사적인 차원에서 불가피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큰 나라를 다루는 솜씨만 세련되면 안정된 경제와 안보를 확보할 수 있으며, 그러려면 미국과 중국에 대한 한국의 선택의 순서가 달라야 한다. 최선과 차선이 다르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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