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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옥 시인
8시에 인천을 떠나 한적한 고속도로를 달려 두 시간여 만에 도착한 대천해수욕장. 사람도 그리 많지 않고 서해안 같지 않게 물도 맑았다. 게다가 모래사장이 거의 없는 서해안에서 만난 해수욕장은 길이가 3.5km 폭100m에 달하는 대형 백사장이었다.

 모래사장을 맨발로 걸어보았다. 무척 입자가 곱다. 모래알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태국의 카오락 해안가 모래 같은 느낌이다. 물론 그것보다 입자가 크지만 그것과 같은 성질임을 발바닥에서 느낄 수 있었다.

 갯벌이 큰 서해안에 어패류가 풍부하니 조개껍질이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잘게 부서져 모래처럼 변모한 것이리라. 그 모래 위로 파도는 밀려오고 또 밀려오고, 끝없이 이어지는 썰물의 시간이 지난 후 또다시 이어지는 밀물의 시간, 들어오는 물도 나가는 물도 여전히 밀려왔다가 돌아가면서 끊임없는 철썩거림을 보여준다. 그 짠물에 발을 담그며 한참을 걸어본다. 모래성을 쌓아보는 아이들, 동굴을 파는 아이들, 아담한 동네를 만들어 보는 아이들, 물끄러미 그 아이들을 바라본다. 나도 언젠가 저런 놀이를 해봤었지. 아마 그곳은 부산이었을 거다. 꿈속의 한 장면으로 그리고 퇴색한 사진으로 언뜻 스치고 지나간다. 역시 바닷가의 모래는 아이들에게 아름답고 희미한 추억의 장소로 각인될 수밖에 없는 곳이다. 백사장 근처에는 소나무들이 있고 그 그늘 아래 앉아 있노라니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무척 시원했다. 그곳에 앉아 먼바다를 바라보니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바위섬들이 눈에 들어온다. 언제나 바닷물을 먹으며 갈매기들 하고나 벗을 하며 천년의 세월을 지나 여기까지 온 저 섬들. 그 섬들 너머로 해는 서서히 지고 있었지만 백중날의 달은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우리에게로 왔고 우리는 늘 보는 그 달을 반가워했다. 낮에 무척이나 푸르고 맑던 하늘에 떠오른 달이기에 더욱 더 환했다. 백중날에 맞춰 달도 볼 겸 달려온 바다에서의 달이기에 그랬을까. 아무튼 우리는 마치 부력에 의해 떠받쳐져 수면위로 둥실둥실 밀려 올라오는 달을 무척 반가워했다. 달빛이 퍼지면서 모래 위로 내리니 마치 눈이 내린 듯 보여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밤 그저 가만히 앉아 있어도 황홀한데 파도소리는 마음의 문을 닫고 사는 사람의 마음을 두들겨 그 문을 열게 해준다.

 이렇게 좋은 밤과 낮이 있는 바닷가에서 언제부터인가 혹자들의 놀이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로 둔갑해 하나 둘씩 생기더니 해마다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해마다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되지만 아무래도 조심해야겠다는 자성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듯하다. 남녀 공히 수영복만 입고 다니는 해수욕장에서 차마 보기 힘든 행위 중의 하나가 성추행인 것이다. 여름휴가를 즐기러 온 자신에게 충실하면 그만인데 왜 남들에게 쓸데없는 관심을 갖는 것인지.

 지난 여름 가족들과 강원도에 갈 일이 있었고 잠시 틈을 내서 양양에 갔을 때의 일이다. 누군가 열심히 사진을 찍는 것을 보았다. 그저 바다 풍경을 사진에 담는가보다 하고 무심히 지나쳤는데 계속해서 한 곳만 찍기에 무엇이 있어 그러나 싶어 봤더니 어느 젊은 여성을 찍는 것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아무 상관이 없는 듯 보여 난 슬그머니 그 여성 곁으로 다가 가서 다른 곳으로 피하라 넌지시 말하면서 스쳐갔다. 몰카를 이용해서 촬영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경계선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방송, 아이를 찾는다는 방송, 이런 것들은 조금만 주의하면 일어나지 않는 일인데 어찌 그리 정신 줄을 놓고 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밤이 되면 놀러온 자신들의 즐거움을 과도하게 표현하다 보니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정도로 술을 마시며 큰 소리로 떠들어댄다. 이런 음주 소란, 폭죽놀이 등은 파도소리까지도 삼켜버릴 정도이다.

 소수의 사람들의 이런 무분별한 행동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자각을 조금만 한다면 바닷가에서의 한여름 밤의 즐거운 추억들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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