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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셔널 맨-우연한 존재

김진형 동국대 강사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6년 08월 19일 금요일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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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실하고 날카롭게 영화 창작에 열정을 불태우는 감독이 있다. 삶에 대한 냉소와 풍자를 재치 있게 끌어내는 블랙코미디의 대부인 우디 앨런 감독. 국내에는 올해 소개된 2015년 작품인 ‘이레셔널 맨’을 통해 감독은 존재의 의미와 삶의 임의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언제나 그렇듯 수다스럽게 진행되는 그의 작품은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주인공을 철학과 교수로 내세운 만큼 다양한 철학자들과 그 사유들이 끊임없는 대사와 함께 흘러나오고 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중간중간 실소를 터트릴 만큼 현학적이지 않게 진행된다. 윤리학을 가르치는 철학교수의 이성과 정의가 어떻게 비이성화(irrational)돼 가는지 영화 이레셔널 맨(irrational man)을 통해 만나 보자.

 한때 누구보다도 이성적인 삶의 방식을 실천해 오던 철학과 교수 에이브는 그간 자신의 노력과 실천이 어떠한 의미 있는 변화도 가져다주지 못함을 깨닫고 무기력에 허덕인다. 새롭게 시작된 미국 동부의 한 대학교에서의 생활도 허무주의에 빠진 그를 해방시킬 수는 없었다. 염세적이지만 뛰어난 언변술과 카리스마로 묘한 매력을 풍기는 그를 마음에 품은 제자 질 폴라드의 끊임없는 관심과 구애에도 그는 활력을 되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폴라드와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에이브는 우연히 뒷 테이블의 대화를 듣게 된다. 부도덕한 판사로 인해 양육권을 빼앗긴 가련한 여인의 억울한 사연은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 여인이 무심코 내뱉은 ‘판사가 암에나 걸렸으면 좋겠다’는 말은 에이브에게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절대적인 목표가 돼 버린다.

 억울한 여인과 그 가족을 위한 정의를 위해 비윤리적인 일을 옳은 행위라 생각하게 된 이 남자. 그러나 ‘비이성적인’ 결단은 그에게 삶의 활력과 창의적이고 주체적으로 스스로의 생을 이끄는 기이한 원동력이 된다.

 매력적인 남녀의 지지부진한 로맨스로 전개되는 영화 ‘이레셔널 맨’은 비이성적 사고로 인해 스릴러로 장르가 변경되고, 이후 영화의 말미에 허탈한 웃음을 주는 블랙코미디로 마무리된다. 이 작품에서 우디 앨런 감독은 비윤리적인 행위를 통해 정의를 구현하려는 자기모순에 대한 지식인의 풍자와 존재 의미의 우연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노장 감독은 "모든 존재는 이유도 연관도 없는 그냥 존재일 뿐, 우리 모두의 삶은 부서지기 쉬운 만일의 사태에 얽매여 있다"고 언급하며 불완전한 세계 속에 우연한 사건들의 느슨한 부분으로 살아가는 우리를 바라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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