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결혼 피로연에서 50여명을 숨지게 한 자살폭탄 테러가 12∼14세 청소년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터키 정부는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를 배후로 보고 있는데, 어린이나 청소년을 동원한 이런 잔혹행위는 전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훈련받는 IS 소년병들 [AP=연합뉴스 자료사진]

21일(현지시간) 외신들에 따르면 IS는 판단력이 부족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세뇌교육을 하고, 잔혹한 군사 훈련을 통해 성인이 되어 전향한 조직원보다 더 강력한 지하디스트 전사로 길러낸다는 목표를 지니고 있다.

IS는 '칼리프의 아이들'이라는 소년병 부대를 운영한다며 2014년 말 이들의 동영상을 연일 유포한 바 있다.

이듬해에는 어린이 조직원이 러시아 스파이와 10대 인질을 처형하고 시리아 정부군 군인을 집단 처형하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올해 3월 바그다드 외곽 마을 축구장에서 벌어진 자폭 테러로 29명이 사망하고 60명이 다쳤을 때도 자폭범은 IS에 세뇌된 10대로 추정됐다.

유엔 아동기구 유니세프도 어린이가 테러에 악용될 우려를 최근 보고서를 통해 내비쳤다.

이라크에서 수천 명의 어린이가 유괴됐으며, 여자 아이들은 성노예의 위험에 노출됐고 남자 아이들은 전투나 자살폭탄 테러에 동원됐다는 것이다.

살육 훈련 받는 어린이 [IS 선전 영상 캡처]

IS의 사정에 정통한 시민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도 지난해 7월 당시까지 IS가 북동부 지역에서 쿠르드족 반군과 전투를 벌이며 18명의 어린이를 자폭테러에 동원했다고 밝혔다.

영국의 테러대응 싱크탱크 퀼리엄은 올해 3월 보고서를 통해 IS가 어린이들이 폭력에 둔감해지도록 교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질 참수 영상이나 실체 처형 장면을 보여주고 참수한 머리를 들어 올리게 하거나 심지어 잘린 머리로 축구 경기를 강요한다는 설명이다.

유엔 이라크지원단(UNAMI) 집계에 따르면 IS가 조직원 확보를 위해 2014년 8월부터 2015년 6월까지 납치·유괴한 9∼15세 어린이는 800∼900명에 달한다.

이달에는 이라크 북부 소수 민족인 야지디족 어린이 1천400명을 납치해 훈련시키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어린이 훈련과 동원의 뚜렷한 전략적 목적 아래 이뤄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최근에는 전 세계로 세력 확산을 노리는 IS가 동남아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포섭에 나섰다는 보도도 나왔다.

지난달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IS가 지난 5월 배포한 16분짜리 선전 동영상에는 부모를 따라 시리아와 이라크에 간 8∼12살 동남아 어린이들이 AK 소총을 조립하고 격투기 훈련을 받는 모습이 담겼다.

IS는 이들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 열도를 대표하는 '칼리프 왕자들'이라고 치켜세웠고, 어린이들은 여권을 불태우며 IS에 충성을 맹세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3월에는 말레이·인도네시아어로 된 선전 동영상을 통해 동남아 어린이들이 군사 훈련을 받는 모습을 공개했고, 올해 4월에는 본격적으로 모병을 위한 뮤직비디오를 배포했다.

이어 6월에는 동남아 무슬림들에게 어른은 물론 어린이도 IS에 충성을 맹세한 필리핀 무장단체 아부사야프에 가담해 활동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현재 시리아와 이라크의 IS 훈련 캠프에는 최소 8명의 동남아 어린이가 있으며, 한 훈련소에서는 말레이·인도네시아어로 교육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질 참수하는 영상에 등장한 어린이 [IS 선전 영상 캡처]

어린 대원을 자살 폭탄 테러에 동원하는 것은 IS만이 아니다. 보코하람, 탈레반 등 다른 극단주의 단체들도 어린이들을 자살 폭탄 테러로 내몰고 있다.

그 역사는 IS의 모태인 알카에다로 올라간다. 2006년 9·11 테러 당시 숨진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의 수괴인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도 이라크를 점령한 미군과 싸우면서 자살 폭탄 공격에 10대를 이용하곤 했다.

지난해 11월 11살 정도로 추정되는 여자 어린이가 포함된 여성 테러범 2명이 나이지리아 북부 카노의 휴대전화 판매장에서 자폭해 15명이 숨진 바 있다.

그에 앞서 1월에도 10살가량의 여자 어린이가 붐비는 시장에서 자폭해 19명이 희생된 적이 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보코하람이 나이지리아와 카메룬, 차드 등 국가에서 어린이를 폭탄테러 요원으로 활용한 사례는 2014년 4건에서 2014년 44건으로 10배 늘었다.

이 지역에서 벌어지는 자살폭탄 테러 5건 중 1건은 어린이들이 가담한 것이다.

유니세프는 폭탄테러에 관련된 어린이의 75%는 여자 어린이였으며 이들 중 많은 경우는 납치된 것으로 보인다며 "자살 폭탄 테러에 이용된 어린이는 가해자가 아니라 희생자"라고 강조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보코하람이 2009년 이후 수백, 수천 명의 어린이를 모집했으며, 수십 명의 여자 어린이를 자살 폭탄 테러에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보코하람의 자폭 테러 현장 [AP=연합뉴스 자료사진]

2012년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본부 앞에서 벌어진 자살 폭탄 테러 공격으로 동냥하던 어린이를 포함해 6명이 사망했다. 당시 아프간 당국은 범인이 16살의 탈레반 대원이라고 주장했고, 탈레반은 이를 부인했다.

지난 3월 낭가르하르 주에서는 12살 어린이가 자살 폭탄 테러를 저지르려다 당국에 저지되기도 했다.

이 소년은 탈레반이 '신앙심 없는 군대'를 죽이라고 자신을 보냈지만, 모스크 안에서 기도하는 군인들을 보자 불안해졌다고 말했다.

탈레반은 '수염이 나지 않은 소년'은 절대 군사작전에 동원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아프간 당국은 꾸준히 어린이 자폭범을 검거했고 그중에는 6살짜리도 있었다.

관계자들은 작은 몸집과 민첩함으로 보안망을 통과할 수 있는 어린이들이 '인간 미사일'로 이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들도 어린이 교육을 위한 여름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어린이들을 자살 공격에 이용하지는 않지만, 2000년대 팔레스타인 2차 봉기 당시만 해도 16살짜리 팔레스타인 소년이 자살 폭탄 공격에 가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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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지안테프 AP=연합뉴스) 터키 남동부 가지안테프주(州) 당국은 21일(현지시간) 전날 이곳 결혼식장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인한 사망자가 최소 51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테러 공격의 배후를 공개적으로 자처하는 단체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으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대원의 소행으로 보인다며 "자살 폭탄 범인의 나이는 12~14세"라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희생자들의 매장식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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