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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범 아나운서
며칠 전에 아마추어 합창인을 만났습니다. 알고 지낸 지 20년이 넘은 지인입니다. 여러 차례 함께 합창 공연도 하면서 가까이 지냈었습니다. 피차 바쁘다는 핑계로 몇 년 만에야 조우하는 자리였습니다. 공통의 취미와 화젯거리가 있어서 그런지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엊그제까지 본 사람 같은 편안함이 있었고 두 시간 남짓한 식사 시간이 짧게만 느껴졌습니다. 그 분은 지금까지도 아마추어 합창단 활동을 하면서 오는 10월에는 정기연주회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낮에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열심히 일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저녁 시간에 짬을 내서 합창 연습을 하는 모습에 존경심도 들었고 내심 부럽기도 했습니다. 대화 중에 합창의 3요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3요소는 소위 3B라고 하는 것인데 Breath(호흡), Balance(밸런스), Blending(조화)입니다. 노래하는 것은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 개개인의 호흡이 중요합니다. 합창에서 밸런스란 각 파트별로 소리가 균등하게 나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끝으로 블렌딩은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의 각 파트가 서로 조화를 이뤄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개개인의 호흡이 흠잡을 데 없이 좋아도, 그리고 파트별로 노래 소리가 균일하게 난다고 해도 전체적인 조화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합창이라고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블렌딩을 하는 것이 바로 지휘자의 역할입니다. 이제는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적인 합창단으로 성장한 인천시립합창단의 음악감독께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자신의 목소리만 크게 내는 데에 몰두하고 있는 듯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합창 교육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소리만 낼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와 자신의 소리를 조화시켜 가는 것이 바로 합창이기 때문입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전근대적인 모습에서 탈피해서 나뿐 아닌 우리가 함께 서로에게 귀를 기울여 공감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폐막한 2016 리우 올림픽에서는 참으로 아름다운 장면이 큰 화제가 됐습니다. 여자 육상 5000m 예선경기에서 뉴질랜드의 한 선수(니키 햄블린)가 넘어지면서 뒤따르던 미국 선수(애비 다고스티노)도 발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다고스티노 선수 입장에서는, 지난 4년간 피땀 흘린 노력의 결과가 물거품이 되고 말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 그 선수는 혼자서만 경기에 임하지 않았습니다. 머리를 감싸 쥐고 좌절하던 햄블린에게 다가가 끝까지 달리자며 손을 내밀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 다고스티노 선수도 오른쪽 다리를 절뚝이며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햄블린이 다고스티노를 일으켜 세웠고 둘은 결국 서로를 의지하면서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경기장의 수많은 관중들이 이 아름다운 모습에 감동의 박수를 보내줬음은 물론입니다. 어찌 보면 피해자였던 선수가 가해자에게 따뜻한 손을 내미는 장면,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일입니다. 이 두 선수는 비록 메달은 목에 걸지 못했지만 금메달보다도 값진 메달을 받았습니다.

 바로 ‘쿠베르탱 메달’입니다. 올림픽 창시자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의 이름을 따 만든 ‘쿠베르탱 메달’은 스포츠맨십을 보여준 선수들에게 수여됩니다. ‘나’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너’도 배려한 훌륭한 행동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나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감정은 무시하면서 살지는 않았나요? 두 선수의 멋진 스포츠맨 정신과, 앞서 말씀드린 합창의 3요소에서 배울 점이 있을 것입니다. 마침 인천시립합창단에서는 오는 20일부터 사흘 동안 인구 300만 시대를 기념하는 ‘인천시민합창대축제’를 개최한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계절 가을에,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합창의 매력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의 과제입니다. 다른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 어떤 것이 필요할지 생각해보시고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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