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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하는 ‘선셋 송’은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돼 국내에 선보인 작품으로 스코틀랜드의 작가 루이스 그래식 기번이 1932년 발표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 작품은 소소하면서도 많은 이야기들을 던지고 있는데, 극 중 주인공인 크리스가 견뎌야 했던 권위적인 시대와 전쟁의 소용돌이 등이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애버딘의 작은 농가. 엄격하면서도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살아가는 크리스는 교사가 돼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집안 분위기는 언제나 숨 막힐 듯 무겁고 어두웠다. 아버지의 강력한 권위 앞에 누구도 그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유일하게 크리스와 소통할 수 있었던 오빠마저 집을 떠나고 어머니까지 돌아가시던 그날, 크리스는 더 이상 자신의 꿈이 이뤄질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러던 어느 날 건강했던 아버지마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이제 그녀는 집안의 모든 살림과 병수발마저 떠안게 된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아버지의 장례식이 치러지고 크리스는 철저히 홀로 남겨진다. 그러나 오히려 크리스는 자신을 옭아매던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힘들고 모질었던 그녀의 삶에도 사랑이라는 한 줄기 희망의 빛이 찾아온다.

 오빠의 친구였던 이안과 결혼한 크리스는 소박하지만 행복한 하루하루를 꾸려 가고 있었다. 사랑의 결실인 아이도 출산한 크리스는 자신만의 온전한 가족과 함께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평온함을 맛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영국과 독일 간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평화롭던 크리스의 삶에 다시금 균열이 찾아온다.

 영국의 노장 감독 테렌스 데이비스가 각색·연출한 ‘선셋 송’은 불안한 세계 속에서 자아를 찾고자 하는 한 여인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한 소녀로의 꿈과 좌절, 질병과 죽음, 전쟁과 폭력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성장하는 여성의 모습은 주인공의 내레이션과 아름다운 카메라 워크와 결합해 한 폭의 서정시처럼 펼쳐진다. 천천히 느린 호흡으로 움직이는 카메라는 이야기의 서사와 맞물려 극의 구조를 탄탄하게 만드는 데 한몫한다. 때로는 불안을, 때로는 아름다움을 포착해 내는 미세한 공기의 흐름은 격동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고단한 여인의 모습을 절제된 담담함 속에 깊이 있게 녹여 내고 있다.

 노을이 짙게 드리운 하늘 아래 서 있는 크리스의 모습은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라 계속되는 삶의 한 페이지에 서 있음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떠들썩했던 마을 사람들도, 시끄러운 소음도 모두 사라진 대지의 한가운데에서 크리스는 비로소 자신이 헤쳐 나가야 할 삶을 긍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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