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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혁진 전 인천안산초등학교장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으로 예부터 웃어른을 존경하고, 자기를 스스로 낮추는 예의를 중요시해왔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예의를 기본으로 여기며 서당이나 학교에서 배워왔다. 그렇지 못한 행동을 할 때는 가차 없는 벌을 받았다.

 겸양지덕(謙讓之德)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겸손하거나 남에게 양보하거나 사양하는 미덕을 의미한 뜻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통해 갈등의 증폭으로 인해 다툼은 물론 나아가 분을 삭히지 못해 살인까지 가는 극단적인 사실을 보아왔다.

 청렴한 삶을 살아온 맹사성은 오직 겸양지덕의 삶을 살았다. 그는 벼슬이 낮은 사람이 찾아와도 공복의 예를 갖추는 겸손한 재상이다. 19세에 장원급제해 지방의 군수로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그는 선정을 베풀고자 인근의 무명선사를 찾아가 자문을 얻고자 했다.

 무명선사는 ‘선한 일을 하면 된다’는 당연한 말을 하자 자존심이 상해 ‘내가 그런 말을 듣자고 찾아온 줄 아냐’며 화를 내고 일어섰다. 무명선사는 이왕 오셨으니 차나 한잔하고 가라면서 찻잔에 물을 따르다 넘쳐흘렀다. 맹사성은 물이 넘친다고 호통을 치자 무명선사는 ‘물이 넘치는 것은 알면서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왜 모르시오’라 했다. 이 말에 수치심에 찬 얼굴로 황급히 방문을 나서다 문틀에 머리를 부딪쳤다. 스님은 ‘고개를 숙이면 절대 다치는 법이 없지요’라 지적했다. 이러한 무명선사의 지적과 가르침은 맹사성을 겸양지덕의 마음으로 평생 좌우명으로 삼고 청백리 삶을 살아온 계기로 명재상이 됐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겸손한 생활은 보석보다 빛이 나고 존경스럽다. 동료들과 어울리다 보면 어깨에 힘을 주고 혼자 나서며 아는 척하는 사람이 있다. 겸손한 생활 형성이 부족한 생활습관의 탓일 것이다. 나이 들어가며 알아도 모르는 척, 풍족해도 부족한 척, 강해도 약한 척하는 겸손한 생활의 미덕이 있어야 우정이 지속하는 이치와도 같다.

 옛날 어머니들은 여식을 시집을 보낼 때 당부한 말이 벙어리로 3년, 귀머거리로 3년을 참고 시댁 식구들과 어울려 보내라 했다. 그래야 시댁에서 행복한 삶을 보낼 수 있다는 친정어머니의 겸손한 생활의 권고도 자식 사랑의 미덕이며 마음의 넉넉한 풍요와 행복을 가져오는 지혜가 아닐까 한다.

 겸손한 생활은 우리의 전통 예절이다. 가정교육은 자녀의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속담에 ‘한 어머니가 백 명의 스승을 능가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가정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한마디로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오늘날 맞벌이 가정이 늘어감에 따라 부모들은 자녀교육에 관심은 높으나 자신감을 잃고 깊은 좌절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요즈음 아이들은 부모의 고마움도 모르고, 물자의 고마움도 모르며, 심지어는 장학금의 고마움도 모르며 감동이 없다는 것이다. 깊은 뜻도 먼 목표도 없고 그저 충동적으로 산다는 것이다. 세대 간의 가치관의 차이로 오는 갈등으로 자녀와 대화도 어렵다고 호소하는 부모가 많다는 것이다. 자녀교육에 학교 교육도 중요하지만, 절대적인 가정교육으로 그 책임은 부모의 역할이다. 자녀들의 이성적인 감성을 파악하고 지식보다 겸손한 생활의 지혜로운 생활 교육이 가정교육부터 우선해야 할 것이다.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을 인간의 칠정으로 심리학에서 정서라 한다. 즉 인간의 생활에서 느끼는 공포·분노·기쁨·슬픔·경이·반감·혐오 등 일곱 가지이다. 어떤 아이는 여기에서 파생되는 정서로 자신감의 결여와 희망, 불안과 낙담, 절망에 이르러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를 흔히 보아왔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식과 지혜의 교육으로 겸손한 생활의 미덕을 키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지혜는 삶의 의의와 목적을 깨닫고 거기에 이르는 길을 체득하는 깊은 통찰력을 키우는 일이다. 단순한 이것저것을 많이 아는 박식이 아니고, 인생과 사물의 본래 의미를 꿰뚫어 행하는 겸손한 생활의 지혜를 가정으로부터 습관화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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