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훈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jpg
▲ 박제훈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
지난 8월 하순에 네덜란드의 마스트리히트를 다녀왔다. 1991년 유럽연합을 출범시킨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체결된 바로 그 도시이다. 네덜란드의 남쪽 끝에 꼬리처럼 내려와 있는 림뷔르흐주의 주도이기도 하며 주청사에 가면 당시 협정을 기리는 조그만 표지판이 남아 있다.

마스트리히트가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고 주변국에서 관광객이 모여드는 관광도시이기는 하지만 정작 주민들은 마스트리히트 협정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벨기에 국경까지는 서쪽으로 차로 5분 거리이고 남쪽으로 30분 가면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 대제의 무덤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 독일 아헨시가 있다.

 마스트리히트는 교육 도시로도 유명한데 마스트리히트 대학과 마스트리히트 음대가 있다. 마스트리히트 대학은 대부분의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며 문제해결식 수업, 즉 교수들의 강의보다는 학생들이 자체 토론을 통해 주어진 문제와 과제를 해결하는 방식의 수업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의 단기 교환학생들이 많이 오고 있다고 한다.

마스트리히트 대학과 유엔대학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UNUㅡMERIT(혁신과 기술사회경제연구소)는 혁신학과 기술경제학에서 유럽과 미국의 저명한 교수들이 참여하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대학원 과정으로 마스트리히트의 자랑거리이다.

 여행의 후반부에는 차를 렌트해 주변국을 다녀왔다. 마스트리히트에서 두 시간거리에 있는 벨기에의 브루헤는 운하의 도시로 북유럽의 베니스로 유명하다. 반나절 정도의 짧은 일정으로 다녀와서 아쉬웠지만 아담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것이 인상 깊은 곳이었다. 다음 날은 독일 아헨을 다녀왔는데 아헨성당 옆에 있는 프랑크왕국의 샤를마뉴 대제 기념박물관에는 그의 유물이 많이 남아 있었다.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룩셈부르크를 다녀왔다. 유럽통합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 모네가 주도해서 만든 유럽철강석탄공동체(ECSC)의 초대 본부가 있었던 건물을 방문했다. 유럽철강석탄공동체는 그 후의 유럽경제공동체(EEC), 유럽공동체(EC) 및 유럽연합(EU)의 모태가 되는 기구로서 이 기구의 설립을 주도한 당시 프랑스의 외무장관 로베르 슈망이 1950년 슈망선언을 발표함으로써 오늘날의 유럽연합운동이 시작됐지만 정작 이 모든 것을 배후에서 기획하고 디자인한 사람이 장 모네이다. 룩셈부르크에는 슈망 생가도 있다. 룩셈부르크 남쪽 끝에 있는 국경지방 솅겐도 방문했다. 1985년 유럽의 국경을 개방하는 조약으로 유명한 솅겐조약이 이 조그만 국경마을의 모젤강 위 선상에서 체결됐는데 이곳은 룩셈부르크, 독일, 프랑스 3국 국경이 만나는 곳이다. 그 자리에 가면 강가에 이를 기념하는 장식물이 있다. 뒤쪽 솅겐성 옆에 있는 골목 구석에 눈에 잘 안 띄게 서 있는 솅겐조약 기념비를 우연히 발견했다. 우리 같으면 요란한 표지판과 안내판이 있었을 텐데 조금은 무심한 유럽 사람들의 스타일인 것 같았다.

 얼마 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가 큰 충격에 빠졌었다. 하지만 유럽 현지에서는 별로 그런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웠다. 선진국이면서 유럽의 오랜 문화적 특성에서 나오는 특유의 느긋함이기도 하겠지만 유럽통합이 이미 생활화돼 있어서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솅겐에서 마스트리히트로 돌아오는 길에 프랑스 국경마을을 잠깐 방문하고 독일과 룩셈부르크 국경을 따라 돌아오는 길에 독일 국경지역을 따라왔다.

 모젤 강변 양측에 독일 모젤 포도주로 유명한 포도밭이 광대하게 펼쳐져 있었다. 아침 10시께 출발해서 마스트리히트에 저녁 7시께 돌아 왔으니까 한나절 만에 5개국을 돌아보고 온 셈이었다. 유럽이 왜 국경을 없애고 유럽통합에 매진해 왔는지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총 2부로 돼 있는 장 모네 회고록을 보면 1부의 제목이 ‘무력의 실패’로 돼 있다.

 여기서 무력은 인류 역사상 모든 통합과 통일은 힘, 즉 무력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직 20세기 후반부 들어 유럽에서 시작된 통합 운동만이 무력이 아닌 설득과 타협에 의한 자발적이고 비폭력적인 통합이라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에 방문한 아헨의 샤를마뉴 대제도 유럽을 통일시켰지만 그것도 무력에 의한 통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나폴레옹이나 히틀러도 마찬가지였고 모두 오래 가지 않았다. 오늘날 유럽통합이 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유럽통합이 힘과 무력에 의한 통합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시적 후퇴나 어려움은 있을지라도 결국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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