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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남례 전 한국여성CEO협회 회장
우리 민족은 세계 어느 민족에서도 찾아보기 드물게 사시사철 절기마다 독특한 풍속을 형성해 왔다. 절기의 풍속을 형성하고 이를 후대에 전하는 과정에서 우리 민족이 화합하고 정서적 순화를 꾀하는 슬기와 지혜를 함께 익혔다고 할 수 있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 역시 이 시기에 맞는 다양한 고유의 풍속이 아직까지 전해 오고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는 추석이 그만큼 풍요롭다는 말이기도 하다. 살기 좋은 쾌적한 날씨에 오곡이 무르익는 풍요로운 수확의 계절인 데다 연휴까지 겹치다 보니 고향을 찾는 귀성객으로 전국의 도로는 자동차로 넘쳐난다. 하지만 민족이 함께 즐거워야 할 명절인 추석에도 고향에 가지 못하고 서러움을 삼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둥지를 튼 새터민이나 고향이 이북인 실향민, 한국에 돈을 벌려고 온 외국인, 이유가 어떻든 홀몸으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독거노인 등이 그들이다. 새터민들은 갇힌 사회에서 살다가 열린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기 쉽지는 않았고, 또 낯선 한국땅에 와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전에 같았으면 힘든 일이 있으면 명절에 친척을 만나 하소연도 하고 도움도 구했는데 그러지 못하니 더 외로운 것 같다. 고향에 연락할 수도 없고 홀로 나와 있으니 얼마나 외롭겠는가. 당연히 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형편에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이제는 고향에 갈 수 있다는 실낱 같은 기대조차 멀어졌지만 그래도 명절이 되면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다.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들도 타국에서 보내는 낯선 명절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사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명절뿐 아니라 평소에도 어느 정도 외롭게 살고 있다. 하지만 명절을 맞으면 고향에 있는 아내와 자식, 어머니 생각이 더 간절해지는 건 외국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거의 모든 외국인 노동자가 설이나 추석 등 명절에도 한국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일하는 회사가 쉬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비행기 표 값을 아끼려다 보니 체류기간 만료 때까지 한 번도 안 나가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외로운 노인들도 많다. 홀몸으로 지내는 노인들 가운데는 추석명절이 다가오는데도 아예 갈 곳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올해 역시 고향을 찾지 못하는 많은 사람이 TV 화면으로 넘쳐나는 귀성행렬을 쓸쓸하게 지켜볼 뿐이다.

 더욱 가슴 아픈 경우도 있다. 고향이 있고, 고향에는 가족도 있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어 못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이야말로 남북 이산가족보다 더한 슬픔을 삼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타율적인 남북한의 분계선도 아닌, 경제적 여건과 힘든 처지에 몰려 남들이 다 가는 고향땅도 밟지 못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고향을 찾지 못하는 이들은 추석을 맞아 지방자치단체나 종교단체 등이 마련한 추석 행사에 참석하며 외로움을 달래기도 하고 아르바이트에 나서기도 하지만 공허함을 얼마나 달랠 수 있을 지 모를 일이다.

 우리가 명절 때마다 고향을 찾는 것은 회귀본능인 고향을 향한 향수 때문이다. 고향이란 내가 세상에 태어나고 자란 곳이니 추석이나 설 등의 명절이 되면 가장 많이 생각나는 건 극히 당연하다. 어릴 적 자신의 흔적과 숨결이 고스란히 간직된 곳이 고향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고향이란 아름답게 그려질 수밖에 없고, 가슴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이상향 같은 곳이기도 하다. 향수를 달래고, 부모 친지를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수확의 기쁨까지 함께 누릴 수 있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벌써부터 고향길이 눈에 선하다. 이번 추석 명절에는 상사, 부하직원, 동료들과 서로 안부인사 나누고, 함께하는 가족에게는 듣기 좋은 덕담도 나누어 보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과는 지나온 일상생활 얘기도 나누자. 더불어 빈곤과 외로움으로 소외되고 있는 이웃을 생각하고, 따뜻한 인정과 사랑을 나눌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불우하고 외로운 이웃과 홀몸노인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는 연휴가 되었으면 한다. 즐거움과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가운데 국민 모두가 행복하고 사랑이 넘치는 민족 고유의 명절 추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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