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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회화, 문학, 연극, 음악, 무용, 건축에 이어 제7의 예술이라고도 한다. 혹은 다양한 예술 장르를 품고 있는 종합예술이라고도 불린다.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거대하고도 진지한 물음에 우리는 철학적이고 심오한 어휘를 동원해 정의를 내려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이해하기 쉽고 정서적인 즐거움이 명쾌하게 전달될 수 있는 간결하고도 정직한 예술이야말로 추구해야 할 좋은 예술이라 언급한 바 있다. 영화라는 매체가 등장했을 당시 톨스토이는 영화를 긍정하지 않았지만, 오늘 소개하는 작품 ‘바보 네이빈’은 매체적 속성을 제외하면 그가 지향하는 좋은 예술, 선한 예술의 축과 닿아 있는 작품이다.

 가난한 흑인 가정으로 버려진 네이빈은 어린아이의 지능에서 성장하지 못하는 가여운 아이였으나 새로운 가족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 그러나 네이빈은 자신이 가족들과 다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자신만이 가족 중에 유일한 백인이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네이빈은 자립하기로 결심하고 집을 나선다. 낯선 고장에 도착한 그는 주유소 점원으로 취직하게 된다. 어수룩한 네이빈이었지만 성실해야 한다는 부모의 가르침에 따라 정직하고 우직한 모습으로 주변의 신뢰를 쌓아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기름을 넣으러 온 손님이 흘러내리는 안경으로 불편해하는 모습을 본 그는 아이 같은 엉뚱함으로 코걸이가 있어 흘러내리지 않는 안경을 만들어 선물해 준다. 새로운 곳에서 안정을 찾아간 듯 보였던 네이빈의 여정은 그러나 끝나지 않았다. 우연히 놀러간 놀이동산에 취직한 그는 그곳에서 평생의 반쪽이 될지도 모를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 실연의 상처로 아파하던 중 그에게 엄청난 행운이 떨어진다. 과거 자신이 개발한 코걸이 안경이 특허 출시돼 엄청난 로열티를 받게 된 것이다. 이제 그는 백만장자가 돼 사랑도 되찾아 전에 없는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해 나간다.

 그러나 이 영화는 부랑자로 전락한 네이빈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그에게는 또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일까? 그는 고전 동화의 착한 주인공처럼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사는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을까?

 영화 ‘바보 네이빈’은 제작자 겸 시나리오 작가인 동시에 코미디언으로도 활동하는 다재다능한 배우 스티브 마틴이 주연한 1979년도 작품이다. 코미디 장르인 이 영화는 시기적인 측면에서 흑백의 인종 문제와 아메리칸 드림의 어두운 이면을 일정 부분 투영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부분을 제외하고 좀 더 코믹적으로만 본다면, 집을 떠나 길 위에서 겪는 다양한 경험들로 주인공의 성장을 보여 주는 로드무비의 줄기가 이 작품에서는 못 말리게 엉뚱하고 유쾌한 소동극과 버무려져 웃음 짓게 한다. 37년 전 개봉된 영화인 만큼 요즘의 개그코드와는 거리가 있지만, 악의 없이 순수한 주인공과 그를 도우려는 착한 주변인들의 모습에서 가슴 따뜻해지는 흐뭇함을 느낄 수 있다.

 극 중 네이빈은 지능이 멈춰 버린 ‘바보’였지만 늘 행복했다. 고난이 닥쳐 와도 특유의 낙천성으로 결국 모든 것을 이겨 냈다. 물론 현실에서 이처럼 생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너무 많은 고민을 짊어지고 있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머리와 어깨만을 짓누를 뿐이다. 때로 우리에게도 ‘바보 네이빈’처럼 대책 없는 낙천주의가 필요하다. 안 되는 건 떠나 보내라! 그래도 다 잘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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