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時調시인.jpg
▲ 김락기 時調시인
시조(時調)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통의 으뜸 시가다. 자유시처럼 이미지로 읽고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리로 읊조리거나 창으로도 부를 수 있다. 요즈음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한글을 배우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자랑스러운 한글로 지은 우리 시조도 세계화될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일 수가 있을진대, 우리 고유의 문학인 시조가 외국인들의 관심 밖에 있을 리 없다. 그럼 우선 본인의 졸작 ‘노을’이란 단시조 한 편을 살펴보자.

 - 하룻날의 압화(壓花)란 게 / 저리 붉게 배이다니 // 이런저런 사연들이 / 피고 지는 자국에는 // 서럽고 / 아쉬운 정이 / 섞여설랑 더 곱구나 -

 한가위 대보름과 함께 가을은 어김없이 왔다. 저 높고 드맑은 하늘에 석양빛이 그려내는 붉디붉은 가을 사연은 무어 그리 서러운지 되레 곱기만 하다. 그런데 삶이란 게 어디 곱고 기쁘기만 하랴. 지난 8월은 참으로 무덥고 서러운 달이었다. 적어도 우리 시조문단의 입장에서는 그랬다. 8월 27일 우리 시조계의 큰 별이 졌다. 백수 정완영 원로 시조시인이 향년 98세로 타계하셨다. 박목월, 이호우 등 유명 문인들과 동시대에 태어나셔서 ‘조국’, ‘감꽃’을 비롯한 빼어난 시조작품을 수많이 남기고 가셨다. 본인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사)한국시조문학진흥는 지난 3년간 충주 수안보에서 매년 ‘수안보온천 시조문예축전’을 주최했다. 고인은 2회에 걸쳐 노구를 이끌고 참여해 축하해주셨다. 우리 시조단의 살아 계신 거목이 참여하신 것만으로도 자리가 빛났다. 그런데, 단지 백수 선생이 돌아가신 것만으로 서러운 것이 아니다. 8월 31일 이른 아침 발인식은 조촐했다. 한국 정신문화의 한 대들보라 할 수 있는 분이시다. 이 시대 가장 훌륭한 시조시인이 별세하셨는데, 언론 보도 등 외부의 반응은 생각 밖으로 저조했다.

이게 우리 시조단의 냉혹한 현실임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근 천년 동안 우리 겨레와 함께 연면히 살아온 정형시!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범국민문학화와 세계화를 목표로 하자. 올 초에 제정된 문학진흥법이 얼마 전 시행됐다. 거기 ‘문학’의 정의에 ‘시조’를 열거하지 않은 것에 대해 본 지면을 빌려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 물론 시조 장르는 문화예술진흥법이나 문학진흥법의 적용을 받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시조 진흥이 잘 될 것 같지 않다. 여태까지도 우리의 종조시가(宗祖詩歌)인 시조가 홀대받는 현실이 이를 반증한다. 60·70년대 중·고교 교과서에 실린 만큼이라도 요즘 교과서에 시조 작품이 실린다면 다행이라 하겠다. 이에 가칭 ‘한국시조특별진흥법’이나 ‘시조문학특별진흥법’의 제정을 제안한다. 이 법에는 글로 짓는 것뿐만 아니라 음악으로서의 시조가곡이나 시조창을 포함할 수도 있겠다. 시조진흥을 총괄하는 기구를 두어 시조작법의 교육·보급과 외국어 번역 등의 관련 업무를 수행하면 좋겠다. 여기에는 시조시인은 물론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골고루 참여시켜, 더불어 시조 진흥에 힘씀으로써 국민 누구나 시조를 가까이 할 수 있게 해야겠다.

먼저 시조의 형식과 명칭에 관한 통일화 내지 표준화 방안을 마련한다. 각급 학교의 교과목과 기업체 내지 공무원 시험에도 필수 문제로 시조부문이 포함되도록 법제화한다. 권위 있는 시조문학상을 제정, 시행한다. 주기적인 전국시조백일장 및 세미나 개최, 상설 시조문화 강좌를 개설한다. 외국인을 위한 특별시조창작교실을 운영하고, 각 나라별 외국인 번역가를 선발·운영한다. 이수화 평론가가 2015년 「한국시조문학」 제7호에서 제안한 다음 사항도 포함되면 금상첨화라 하겠다. TV 등 방송매체에서는 일일 또는 주간 편성으로 온 국민 시조 짓기 프로그램을 제작, 방송한다. 일본 NHK는 하루 온종일 TV방송으로 일본의 정형시인 하이쿠(俳句) 짓기를 한 지가 10년이 다 돼 간다고 한다. 70년 초에 시작된 새마을 운동은 농촌개발 및 의식개혁의 모델로 아프리카 등지에 보급되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이에 비해 유구한 전통에 빛나는 우리 시조가 전 세계를 향해 대한민국의 정신문화 창달의 주역이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