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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림 칼럼니스트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역사적인 중국 방문 시 마오쩌둥에게, 마오 주석이 세계를 바꾸었다는 덕담에 그는 매우 겸손하게 북경 외곽 주변의 몇 가지 일만 바꾸었을 뿐이라고 대응한 일화가 있다. 그러나 40년 후 시진핑은 세계질서를 중국 중심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질서는 2차대전 이후 미국과 서구를 중심으로 하여 구축됐다. 즉 UN을 중심으로 한 세계 정치체제와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과 GATT로 대표되는 이른바 브레턴우즈체제의 국제경제 질서를 일컫는다. 마오쩌둥은 이러한 국제질서를 제국주의자들과 식민주의자들을 위한 일방적이고 위법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며 제3세계의 맹주 역할을 했다. 그 후 덩샤오핑체제 이후의 중국은 개혁개방정책을 선택해 그동안 비난의 대상이던 UN시스템의 주요 국제기구와 WTO에 가입하고, 지역협력기구인 APEC과 아세안지역포럼에도 참여해 이들을 경제개발의 지렛대로 활용했다. 중국은 이러한 국제경제 질서에 편입과 동시에 세계화의 수혜자로서 고도의 경제성장을 장기간 이룩할 수 있었고, 덩샤오핑의 후계자인 장쩌민과 후진타오도 이와 같은 개혁개방 노선을 답습했다. 이들은 덩샤오핑의 유지인 ‘도광양회’를 실천해 주변 국가들을 자극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2년 제5세대 지도자로 등장한 시진핑은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란 최적의 환경에서 출발했다. 더욱이 2008년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의 경제를 쇠퇴시켜 미국이 세계경제를 견인할 동력을 잃어 버리자, 시진핑은 중국굴기의 자신감을 얻게 됐다. 경제력뿐만 아니라 정치, 군사부문에서도 국제시스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위치가 중요해지자, 중국은 이제 단순히 국제질서에 편입되기보다는 국제질서가 변화되는 중국에 적응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즉 국제질서가 모든 국가의 진정한 독립유지와 개별국가의 생활 양식과 정치적인 선택이 보호되도록 개별 국가의 정치와 문화의 차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의 이러한 자신감은 경제력과 자신의 권력 강화에서 나왔다. 그의 전임자들과 달리 시진핑은 당과 정부, 군사 등 국가의 모든 부문에서 최고지도자로서 의사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다. 전통적인 집단지도체제도 거부됐고 총리가 경제부문을 통제하던 관례도 없어졌다. 이러한 권력 강화를 위해 언론 통제와 대대적인 반부패 캠페인으로 사회 분위기를 바꾸고 거시적으로는 정치와 경제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더욱이 그는 ‘중국의 꿈’인 과거의 중화제국의 영광을 되찾도록 인민들에게 애국심을 고취하고 있다. 제국은 으레 영토 확장을 지향한다. 이처럼 최근 중국은 남중국해에서의 인공섬 구축 등 영유권 주장으로 인접 국가들과 분쟁을 유발하고 있다. 이에 필리핀이 제소한 중재재판소의 국제법 위반 판정에 대해서도 불복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동중국해에서도 중국항공식별구역에 이어도가 포함돼 우리와 영토 분쟁이 예상되고 있다.

한편 미국의 아시아회귀정책(Pivot to Asia)을 아시아에서 중국을 억제하려는 전략으로 보고 있다. 이에 시진핑은 아시아 문제와 안보는 아시아인들이 해결할 수 있고 지킬 수 있으며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은 아시아인들의 협력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결국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과 지역동맹국들을 무력케 하는 것으로 미국은 해석하고 있어 긴장 국면이 예상된다. 중국공산당의 존재 이유와 정당성은 경제성장과 민족주의가 지탱시켜 준다. 중국경제가 이제 저성장 국면으로 돌아서고 있기 때문에 인민의 관심을 민족주의로 돌리기 위해 향후 주변국들과 영토문제를 제기할 소지가 있다. 나폴레옹이 중국에 한 말처럼 잠자는 사자가 깨어나 세상을, 곧 국제질서를 뒤흔들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한중의 현안인 국내 사드 배치에 중국은 자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반면, 북한체제의 붕괴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의 지속적인 핵실험에도 과도한 국제제재를 반대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국은 북한에 대해 많은 면에서 지렛대를 갖고 있지만 북한의 붕괴는 대량 난민 유입과 전략적 완충지대가 사라져 미군과 대치하는 위험으로 인해 북한체제를 불안정하게 하는 지렛대를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중국은 북한의 핵문제 해결에도 우리와 생각을 달리하고 있을 뿐 아니라 통일보다는 현상고착화를 한반도정책의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우리가 바라는 이웃은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선린관계이다. 즉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비차별, 시장경제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이웃이다. 과연 중국이 이러한 가치를 공유하는 선린관계의 파트너가 될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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