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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디어를 통해 너무 쉽게 한 사람이 영웅이 되기도 하고, 범죄자가 되기도 한다. 사건의 정황을 면밀히 조사해보지 않고 한쪽의 의견에 치우쳐 보도를 하게 되면 불가피하게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언론의 오판으로 마녀사냥을 당하는 경우보다 더욱 억울한 상황은 법의 공정한 심판을 기대할 수 없을 때일 것이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나는 살고 싶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1958년 작품으로 법과 미디어의 오판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멸시켜 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사회성 짙은 수작이다. 이 작품은 뮤지컬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사운드 오브 뮤직’의 로버트 와이즈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바바라 그레이엄 역의 수잔 헤이워드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53년 3월 9일 밤 캘리포니아, 한 노부인이 자신의 집에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로부터 약 2개월 뒤, 유력한 용의자 3명이 체포되는데, 그 중에는 바바라 그레이엄이라는 여성도 포함돼 있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매력적인 외모의 그레이엄은 살인자라는 타이틀과는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시종일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었다. ‘젊고 아름다운 외모’, ‘갓 돌이 지난 아들 둔 어머니’ 등의 타이틀은 그녀의 유, 무죄 여부를 떠나 신문 판매고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 이에 언론사들은 앞다퉈 그녀에 대한 소모성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레이엄은 절도, 위증, 위조, 사기 등의 범죄행위에는 잔뼈가 굵었지만, 정작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잘 알지 못했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 언론에게 날을 세우며 냉소적이고 독설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자, 미디어는 그녀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갔다. 노 부인 살인 사건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는 그녀의 외침은 이전 범죄 전력인 위증죄가 부각돼 결국 배심원들의 이해를 구하지 못했고, 그녀는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 받게 된다.

영화 ‘나는 살고 싶다’의 러닝타임은 120분에 달하는데, 사건 발생부터 선거 공판까지의 과정이 절반을 차지하고 나머지 절반의 시간은 사형집행 과정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처절하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살고 싶어하는 한 여인과, 씁쓸한 마음으로 법을 집행해야 하는 사람들. 반면 여전히 썩은 고기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들처럼 사형장 앞에 진을 치고 기다리는 기자들과 호기심 어린 대중의 모습을 흑백의 이 영화는 담담하면서도 사실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끝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여인의 안타까운 마지막을 목격하게 하는 이 작품은 인간의 존엄, 삶의 가치, 미디어의 자세, 바른 법의 집행, 사형제도 존폐 등 여전히 끝나지 않은 사회적 문제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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