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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재웅 변호사

최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황교안 국무총리는 상해임시정부가 국가 3요소를 충족했었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충족하는 과정에 있었다"라고 답했다. 임시정부는 국가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으므로 정부 수립일인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과 사실상 동일한 입장을 보인 것이다. 이전에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 기념식에서 ‘건국 68주년’이라는 말을 사용해 논란이 된 바도 있다. 종래 일반적인 입장은 1945년 8월 15일은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을 맞은 날이고,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날로 별도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반면 최근 여당과 뉴라이트 진영에서는 상해임시정부는 영토, 주권, 국민이라는 국가의 3요소가 없으므로 1948년 8월 15일은 단순한 정부 수립일이 아니라 대한민국 건국일이라고 보고, 이를 ‘건국절’이라는 별도의 기념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의 기구나 조직을 중요하게 본다면 ‘건국절’을 주장하는 측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건국의 의미를 어떻게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으므로 학문적인 논의는 있을 수 있다. 다만 ‘건국절’을 국가적으로 지정한다면 심각한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어 우려된다. 우선,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건국절로 지정하면 한일 병합조약의 합법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일 병합조약은 한국 측의 진정한 의사를 무시하고 일제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체결됐고, 절차적으로도 불법이므로 무효로 보아야 한다. 1965년에 체결된 한일 기본조약에서 한일 병합조약은 무효라고 선언된 바도 있었다. 법률적으로 한일 병합조약이 무효라면 그 조약은 무효로 선언된 때부터 효력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효력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일제강점기에 강탈된 우리의 주권과 영토는 모두 소급적으로 회복된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는 불법적인 침략으로 주권을 행사하지 못한 것이지 주권을 잃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건국절을 주장하는 측은 일제강점기에 영토와 주권을 일본에 잃었기 때문에 임시정부가 국가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이는 곧 일제강점기에 영토와 주권이 일본에게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며 한일 병합조약의 효력을 용인하는 부당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두 번째로 대한민국이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우리 헌법의 선언이 형해화될 수 있다. 상해임시정부는 3·1운동의 독립선언서를 기초로 일제의 침탈과 식민 지배를 부인하고 독립운동의 구심이 되고자 건립된 정부이며, 대한민국 정통성의 모태가 되는 망명정부이다. 상해임시정부는 일제강점기 한반도의 합법 정부임을 내세워 한일 병합조약의 무효와 국민들의 독립 의지를 보여왔다. 대한민국이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함으로 인해 북한에 대해서도 국가 정통성의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제헌 헌법 전문에도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다"라고 기재해 우리나라는 임시정부의 설립으로 건국되고 1948년에 재건됨을 분명히 한 바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건국을 1948년으로 보면 상해임시정부의 법률적 위상이 격하돼 버린다. 즉 상해임시정부가 합법적인 망명정부가 아니라 독립운동가들의 임의단체로 추락하는 것이다. 또 대한민국은 1948년 이전에는 없었던 것이 되므로 1948년 이전부터 있었던 상해임시정부와 대한민국의 관계가 단절되고, 독립운동가들과 연결고리도 모호해진다. 이는 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바쳐 상해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또 지켜낸 뜻과는 멀어지는 것이다. 상해임시정부와 대한민국의 단절은 우리나라의 역사적 정통성에도 악영향을 준다.

 이와 같이 ‘건국절’을 지정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여러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 반면 지정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국익이 큰 것도 아니다. 이런 이유로 ‘건국절’ 논란이 이념적 정쟁의 수단에 불과하다는 의심도 크다. 건국절에 대한 불필요한 논쟁이 커진 것은 여당 일부의 무리한 주장과 정부의 모호한 태도에 책임이 있다. 상해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의 망명정부였으며, 독립운동가들이 숭고하게 희생한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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