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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옥 시인
2천500만 년 전에 생겼다는 바이칼호수를 지난 8월에 다녀왔다. 인천-이르쿠츠크-바이칼호수 알혼섬-이르쿠츠크-인천에 이르는 여정 총길이 9천224㎞였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하바롭스크를 거쳐 이르크추크까지 75시간을 달렸다.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3세가 1890년부터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구상, 건설한 그 기차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4천㎞ 이상 떨어져 있는 바이칼을 향해, 3일 동안 전나무 숲 그리고 적송나무 숲, 간간히 보이는 나무로 만든 집들-시베리아 벌판이 추울 텐데 저렇게 허술한 통나무집에서 어떻게 살까 궁금했는데, 사실은 그 안에 땅을 깊이 파고 산다는-그 모든 것을 보여 주면서 달려간 것이다. 예전에는 우리나라가 남북이 갈라져 있지 않아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갈 수 있었기에 연해주 같은 곳곳은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하던 장소이기도 하며, 치타라는 곳에 머물면서 춘원 이광수는 소설 「유정」 등을 쓰기도 했다. 손기정 선수도 화물열차를 타고 베를린올림픽에 참가했으며, 헤이그 밀사인 이상설·이위종 등도 이 기차를 이용했다. 바로 그 철로로 바이칼에 다녀 온 것이다. 그저 무작정 가기만 하는 듯한 먼 곳 바이칼호수.

 바이칼호수 안에는 22개의 섬이 있지만 제주도 반 정도 크기의 알혼섬이 제일 크다. 그곳의 원주민 브리야트족은 ‘바이칼은 불을 토하며 무너져 내려앉은 산이 호수가 됐고, 만물을 생성하는 힘이 모인 곳’이라고 믿었다. 호수 주위를 해발고도 1천500∼2천m의 바이칼산맥이 둘러싸고 있으며, 약 336개의 강이 흘러 들고, 나가는 수로는 앙가라강뿐이다. 지구의 물 20%를 간직하고 있는 최대의 담수호로서, 물이 하도 맑아 신발을 벗고 물가를 걸어보니 시원하고 감미롭다. 바이칼호수에서만 사는 ‘오물(Омуль)’이라는 물고기를 꼭 한번 먹어 보고 싶었는데, 여행 중 바이칼호수 근처 방가로에서 운전기사가 오물탕을 끓여줘 러시아식 거무스름한 토속 빵인 듯한 것과 함께 먹으니 비리지도 않고 시원했다. 바이칼은 몽골 샤머니즘의 발생지로 알려져 있다.

 1만여 년 전, 바이칼호수 주변에 살던 북방계 몽골리언 브리야트인들은 호수가 자신들을 낳았으며, 바이칼을 통해 신의 세계로 갈 수 있다고 믿었다. 칭기즈칸의 생모가 브리야트족이란 이유 때문일까, 이 호수에 칭기즈칸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도 있다. 인류학계에서는 아시아에 흩어져 사는 몽골리언들의 혈청 유전자 분석을 통해 선사 몽골리언들의 근원지를 바이칼로 추정한다. 어떤 인류학자는 우리 민족의 시원을 여기서 찾기도 하는데, 실제로 국내 유전학연구소가 몇 년 전 민족 간 유전적 거리를 조사한 결과 북방민족 가운데서도 한국인, 일본인, 브리야트족은 유전자 75%를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냈다.

 알혼섬에는 ‘부르한바위’가 있는데, 여기서 샤먼들이 신 내림을 받기도 하고 함께 모여 의식을 치르기도 하는 신성한 장소로 여긴다. 부르한바위는 멋지거나 웅대하지는 않지만 이들은 그 바위를 성스럽게 생각하는데, 과학자들이 분석해 본 결과 바위 전체가 자력이 강한 철광석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다른 바위와 차별이 되는 느낌을 받았기에 그 옛날 사람들이 이 바위를 신성시했나 보다. 또한 브리야트인들은 시신을 매장하면 묘지를 찾지 않는다. 윤회의 원리에 의해 망자는 이미 다른 곳으로 갔으므로 가족들이 찾아가면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약 1만2천 년 전 이들은 날카롭고 정교한 석기를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고 사냥을 하면서 아무르강 유역으로, 혹은 빙하를 따라 북극의 혹한 지대로 진출한다. 냉혹한 기후에 적응한 몽골리언들은 베링 육교를 넘어 북미 대평원에 도달 북미 인디언의 조상이 된다. 대평원을 떠난 일부는 미국 남부의 건조지대를 거쳐 중미의 밀림을 지나, 파나마 지역을 따라 아마존의 밀림과 페루의 해안지대를 통과해 대륙의 끝에 이른다. 수많은 몽골리언들을 떠나보낸 바이칼은 이제 몇 안 되는 몽골리언 종족이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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