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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청영 인천지구 황해도민회 회장
지금 우리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엄중한 안보상황에 처해 있다. 북이 9월 9일 5차 핵실험에 성공했으나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야당은 "햇볕정책을 버린 결과다. 북에 특사를 파견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정부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우리와 같은 핵 위협에 처했던 이스라엘은 전쟁을 각오하고 앞으로 다가올 핵 위협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취해 1981년 왕복 2천500㎞를 날아가 이라크 원자로를 폭격했고, 2007년 시리아 원자로를 폭격해 지금 핵 위협에서 벗어났다. 이러한 이스라엘을 타산지석으로 삼지 않고 북핵에 대한 초기 대응에 실패해 오늘의 핵 위협을 당하고 있다.

 우리는 북핵 문제가 불거진 1993년부터 지금까지 23년 동안 다섯 정부를 거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미북양자회담, 햇볕정책, 6자회담, 압박정책 그 어느 것도 북의 핵개발을 막지 못했다. 1991년 소련 붕괴 시 노태우 전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를 선언했으나, 북한은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 NPT에서 탈퇴하면서 핵개발을 선언하고 원자로를 가동했다. 이때 미 클린턴 행정부는 이스라엘처럼 북 연변 핵시설을 폭격하려 했으나 북핵 위협을 실감하지 못한 김영삼 정부의 강력한 반대로 폭격이 무산됐다. 그 후에 김대중 정부도 북한의 핵개발 위협을 느끼지 못하고, 미국과의 대화용으로만 안일하게 생각하고, 햇볕정책으로 막아보려 했으나 오히려 햇볕정책으로 시행된 금강산 관광을 통해 지급된 자금과 정상회담 조건으로 지급된 4억5천만 달러 및 개성공단사업 대가로 지급한 자금이 핵개발을 촉진시켰다. 대화용이라는 오판과 속임수에 뿌리를 둔 햇볕정책은 실패했고, 다음 노무현 전 대통령도 북핵 문제에 있어서 북한 입장을 지지하고, 옹호하며 북한 입장에서 미국과 싸웠다.

 북한은 1991년 소련 붕괴 시 소련의 핵 기술자를 받아들여 핵을 개발해 2006년 10월 9일 1차 핵 실험을 했는데, 이러한 안보위기의 상황에서 핵 실험 두 달 뒤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시작전권 이양요구 연설에서 "남한의 군사력이 북보다 훨씬 강하다. 일선에 배치된 미2사단을 뒤에 재배치해도 상관 없다. 미국한테 바짓가랑이 매달려가며, 미국 엉덩이 뒤에 숨어가지고 형님 빽만 믿겠다. 이게 자주 국가 국민들의 안보의식이냐?"며 북핵 위험을 실감하지 못하고, 오히려 북의 핵보유는 자위수단으로 일리가 있다고 주장하며 북의 핵개발 위험성을 느끼지 못하고 북핵 보유를 두둔해 우리의 안보를 더욱 위험하게 만들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는 핵시설 폭파 시기를 놓쳤다. 비록 햇볕정책 포기, 금강산관광 포기 및 개성공단 포기 등으로 북을 압박했으나 이미 때가 늦었다.

 북한의 유일한 동맹인 중국이 북핵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중국도 북핵을 반대하지만, 김정은의 핵개발을 막기 위한 고강도 제재로 북이 와해되는 것을 원치는 않는다. 북한의 핵보유보다 북한의 붕괴를 더 두려워한다. 밉든 곱든 북한을 안고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군대를 주둔시킨 미국에 대항해 중국을 지켜주는 완충국가로 북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북핵 폐기를 위해 북한정권을 망하게 할 수는 없다는 중국이 있는 한 북핵을 막는 길은 험난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나 북핵문제 해결을 포기할 수는 없다. 우리는 북핵 억제를 위한 제재에 동참하고 있는 전 세계 70여 개국과 더불어 대북 압박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보다 강력한 경제 제재로 김정은 정권의 숨통을 조이면 김정은 정권의 종말이 앞당겨질 것이다.

 북핵문제가 해소될 때까지 전술핵 재배치와 핵개발 등 다양한 방안에 대한 논의도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공조체재를 더욱 긴밀히 하며, 미국이 가진 외교, 군사, 경제력을 활용해 북핵 문제를 풀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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