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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승연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동북아시아라고 하면 우리는 역경과 희망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떠올린다. 100여 년 전 동북아 패권을 쥐려는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은 우리는 나라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현재 상황도 녹록지 않다. 북한은 핵무기를 전면에 내세우며 우리를 위협하고 있고,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를 비롯해 동북아에서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다. 여기에 일본과 러시아도 가세해 동북아에서의 자국 역량을 높이고자 혈안이 돼 있다. 우리 국력이 강해졌다고는 하나 오늘날 동북아 상황은 100여 년 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동북아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동북아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빠른 경제성장이 태평양을 통해 들어온 선진기술과 자본을 통해 가능했다면, 앞으로의 우리 먹거리는 동북아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중국과 러시아 극동, 몽골,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북한과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해야 우리의 미래가 있다. 그러나 최근 동북아에서 이러한 우리의 희망과는 다른 흐름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금융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4조 원이 넘는 돈을 내며 적극 대처해 왔다. 우리 정부가 AIIB에 출자한 37억 달러(지분율 3.81%)는 중국(30.34%), 인도(8.52%), 러시아(6.66%), 독일(4.57%) 다음으로 높은데도 ‘홍기택 사태’로 상징되는 자중지란으로 5명의 부총재에 한국인이 포함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앞으로 동북아 금융을 주도할 AIIB 정책 결정에 우리 목소리를 반영하기 어려워졌다. 다음으로 우리나라는 부산에서 열차를 타고 북한을 거쳐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모스크바, 유럽으로 가는 교통물류 분야의 큰 꿈을 꿔왔다. 그런데 최근 러시아가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일본 홋카이도(北海道)까지 연결하자고 일본 측에 제안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로 대표되는 동북아 교통물류 혁신에 대해 우리 정부는 현재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가 북핵 문제로 인해 그동안 추진해 왔던 북한 관련 사업을 사실상 전면적으로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여기엔 러시아가 참여하고 있는 TSR와 TKR(한반도횡단철도) 협력사업도 포함된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와 일본 간에 TSR 연결사업이 구체화된다면 TKR 연결사업은 그 동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으며, 자연스럽게 한반도는 지정학적 측면에서 고립될 것이다.

 한편 현재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극동 하바롭스크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어지는 길에는 가스관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시베리아의 힘’이라고 이름 붙여진 총연장 4천km 가스관은 2019년부터 시베리아의 대형 가스전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를 중국 동북지역에 공급하게 된다. 2014년 중국 국영기업인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CNPC)와 러시아 최대 국영 가스기업인 가즈프롬 사이에 체결된 4천억 달러(약 472조 원) 규모의 계약으로 러시아는 앞으로 30년간 중국에 천연가스를 공급하게 된다. 또한 최근 가즈프롬은 일본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위해 극동 사할린의 LNG(액화천연가스) 생산기지를 증설한다고 밝혔다. 계획을 내년 중에 최종 결정해 2022년부터의 생산을 목표로 한다. 러시아는 사할린에서 PNG(파이프라인으로 운송하는 천연가스) 형태로 일본에 공급할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러시아 천연가스를 블라디보스토크로부터 도입할 계획을 이미 10년 가까이 전에 세웠지만, PNG 형태는 북한에 가로막혔고 선박을 통한 LNG 수송은 크게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셰일가스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동북아 에너지 수급구조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금융, 물류, 에너지는 통상외교에 있어 핵심이다. 특히 동북아에서는 이들 분야에서 각국 간의 합종연횡이 한창이다. 북핵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통상이 풀린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다면 우리는 동북아 섬나라로 전락하고 만다. 보다 유연하고 현명한 동북아 통상외교가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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