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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제 불은초등학교장
잠시 고개를 들어 시선을 조금만 멀리하면 누런 들판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그야말로 황금물결이다. 그리고 후각을 자극하는 향기에 감사와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가을 들녘에 서면 벼가 익어가며 구수한 냄새가 나는데, 그 냄새를 한자로 ‘향(香)’이라고 한다. ‘벼 화(禾)’ 자와 ‘날 일(日)’ 자가 합해진 글자이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벼는, 속에 진한 향기를 잉태한다. 벼를 비롯해 들판에서 익어가는 조와 수수들도 뜨거운 햇볕, 천둥과 장마를 견디면서 저마다 겸손하게 고개를 숙인다. 사람이 성숙할수록 생각과 행동이 깊어지고 겸손해져 고개 숙이는 것이나, 벼가 많은 비바람의 세월을 견디고 성숙해 머리를 숙이는 것은 같은 이치일 것이다.

 교육이란 향기 있는 사람이 되도록 돕는 일이다. 따라서 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더욱 겸손해지고 더 깊이 머리를 숙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 현상은 이와는 상반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나 정치인, 고위공직자들은 대부분 높은 학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데 국민들의 사회지도층에 대한 시선은 그야말로 불신 그 자체이다. 우리 사회 최고 수준의 인물들이 모여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조차 국정감사 중에 이뤄지는 일부 몰지각한 언행들은 무시와 경멸을 자초하기도 한다.

 특히 최근 끊이지 않고 나타나는 교육계 지도층의 비리와 이중적인 언행은, 국민들에게 더 큰 실망과 좌절을 안겨준다. 더욱 한심한 것은 자신들의 문제에 대하여는 언제나 근거 없는 공격이나 음모라고 일축하고, 상대방의 문제는 그야말로 눈에 불을 켜고 확대시켜 가며 비난과 공격을 일삼는 태도이다. 자신에게는 지나치게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관용은커녕 추측과 허구까지 동원해 비난하기 일쑤이고, 심지어 그것을 마치 무용담이나 전공처럼 생각하는 사건들이 비일비재하다.

 최근 우리에게 더 큰 실망과 좌절을 안겨주는 사건들은, 무능하고 정의롭지 못한 기득권 세력에 대한 비판과 비난을 통해 당선된 선출직 공무원들의 비리이다. ‘행정이나 정책 수행 능력 등을 제쳐두고 최소한 청렴은 하겠지’ 하는 기대로 표를 던진 유권자들에게, 실망을 넘어 배신감까지 느끼게 한다. 사회가 발전하고 풍요로워질수록 사람들의 외형은 아름다워지고 있다. 풍부한 식생활과 날로 발전하는 의술, 다양한 건강정보 등을 바탕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본성을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과 투자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수록 증가하는 아동학대나 무차별 살인 등 비정상적인 사회현상을 볼 때마다, 우리의 내면은 오히려 추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교육 역시 갈수록 다양한 프로그램과 더불어 풍부한 기자재를 활용하며 이루어지고 있다. 책과 필기도구만으로 이뤄지던 이전 교육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풍요롭고 화려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교육에 시간과 노력, 물질을 투입할수록, 오히려 교육 본연의 목적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교육이 사람다운 사람을 기르고, 자아실현을 이루는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려면 향기가 있어야 한다. 경쟁에서 이겨 자신이 자리하고 싶은 직장이나 지위, 소유하고 싶은 물질을 차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교육의 역할이 자리한다면, 교육을 받을수록 향기와 겸손은커녕 악취와 교만이 증가될 뿐이다. 세월이 갈수록 익어가며 겸손하게 고개 숙이는 벼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황금물결을 일으키는 가을 들판을 바라보며 향기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향기란 자극적인 향수나 감각적인 화장품 냄새, 강한 꽃내음을 이르는 것이 아니다. 성숙과 겸손에서 비롯된 넉넉하고 편안한 느낌이 진정한 향기인 것이다. 받을수록 향기를 더해가는 사람이 되는 교육을 생각하며, 벼가 익어 고개 숙이며 발산하는 香(향기 향)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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