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와 북한이슈를 고리로 대선정국이 조기 가열되고 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 가운데 지난 2007년 11월 노무현 정부 당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기권 결정이 북한 의사를 묻고 이뤄졌다고 쓴 한 대목이 도화선이 되고 있다.

 특히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안보관 검증이 정국의 핵(核)으로 떠오른 양상이다.

 5년 전인 2012년 대선에서도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논란은 대선정국을 크게 뒤흔들었다. 당시 이 논란은 보수진영에 결집효과를 가져다주면서 문 전 대표에게는 엄청난 정치적 타격을 안겨줬다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번에도 사안은 다르지만 비슷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제2의 NLL’ 논란이 불거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 새누리당에 설치된 'UN 북한인권결의안 대북결재사건 TF'(가칭) 팀장을 맡은 박맹우 의원이 17일 오전 국회 당 대표회의실에서 '송민순 회고록'과 관련, "진상규명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TF를 진상규명위원회로 바꾸기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새누리당은 이미 장기전 태세에 접어든 느낌이다. 회고록 내용이 알려지자 즉각 구성했던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대북결재 요청사건 태스크포스(TF)’를 위원회로 격상하고 내년 12월 대선까지 외교·안보관과 대북정책 검증의 주요재료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1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회고록이 사실이라면 대한민국의 주권 포기이자 심대한 국기문란 행위"라면서 "국정조사, 국회 청문회, 특검, 검찰수사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그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도 ‘색깔론’ 프레임은 경계했다. 자칫 ‘종북몰이’로 비치면 젊은 유권자는 물론 부동층으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 있고, 실제 2010년 천안함 사태 직후 열린 전국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뼈아픈 경험도 있다.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송민순 회고록'인 '빙하는 움직인다-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현 대표는 "이 사안은 정치적으로 접근할 문제도, 정쟁을 벌일 사안도 아니다"라면서 "외교, 남북관계 정책의 결정 과정을 검증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회고록 내용이 사실이라면 매우 중대하고 심각한, 충격적인 일"이라고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여권으로서는 이번 파문이 정치적으로는 분명히 이득이 된다고 볼 수 있다. ‘회고록’ 국면이 계속될 경우 미르·K스포츠재단을 통한 대규모 정권 차원의 모금 의혹 등 야당의 공세를 꺾어놓는 부수적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제5차 북한 핵실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배치 논란 등으로 보수가 강점을 보인다는 안보 분야에서도 결코 유리한 상황이 아니었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임기 중 최저치를 기록한 상태였다.

 반대로 더민주로서는 ‘색깔론’으로 이번 사태를 규정하면서 국면을 서둘러 미르·K스포츠재단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등의 의혹 규명 쪽으로 전환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우상호 원내대표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연합뉴스
 추미애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과 집권당, 검찰권력은 한참 낡은 환멸스러운 종북몰이 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있다"면서 "측근 실세의 비리를 덮으려 종북의 종자라도 붙일 여지가 생기면 앞뒤 안가리고 마녀사냥 하는 행태를 묵과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우상호 원내대표도 "아무리 미르·K스포츠재단 비리, 최순실 관련 의혹을 덮고 싶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서 "국감을 파행시켜도 막을 수 없고 색깔론으로도 막을 수 없는게 비리의혹"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당도 이에 가세하며 외형상 새누리당을 비판하고 있다.

 

▲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정부·여당과 청와대가 시도 때도 없이 색깔론으로 계속 매도하려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종착역에 다가서면 결국 국민의당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문 전 대표와 경쟁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대응에 있어 미묘한 온도차가 감지된다.

 한때 안 전 대표의 ‘복심(腹心)’으로 불렸던 이태규 의원은 교통방송 라디오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 "새로운 어떤 정치의 지형을 꿈꾼다면 같은 논의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