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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봤던 지명수배자 전단이 잊혀지지 않는다. 강도살해를 저지른 한 사람. 그는 여관 주인을 무참히 살해하고 현금 16만 원을 가지고 도주한 용의자였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없었기 때문에 원한에 의한 살해인지, 아니면 금품을 갈취하려는 과정에서 상해사건이 발생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생명이 위험에 처했던 그 상황 속에서도 현금 16만 원을 움켜쥐고 발길을 돌렸을 혐의자를 생각하면 씁쓸한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어쩌면 피의자는 이미 법의 심판 아래 죗값을 치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순간의 그릇된 행동은 타인의 생명뿐 아니라 그의 삶도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파고’는 이처럼 나쁜 선택으로 인해 삶이 꼬여 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과연 이들의 나쁜 선택에는 어떤 공통분모가 존재할까?

 미국 노스다코타주의 도시 파고. 세일즈맨 제리는 목돈을 융통하기 위해 깡패를 고용, 자신의 아내를 납치할 것을 청탁한다. 이유인 즉, 지역 유지인 장인에게 아내의 몸값을 받으면 그 돈으로 사업 밑천을 마련할 심산이었다. 제리의 생각에 이 계획은 다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좋은 유괴였다. 장인에게는 돈이 많으니 100만 달러 정도는 적선하는 셈 치고 잃는다 해도, 결국 그 돈으로 사위인 자신과 딸과 손자가 잘 먹고 잘 살 계획이니 ‘윈-윈’이라 자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엔 좋은 유괴도, 정직한 속임수도 있을 수 없는 법! 제리의 순진한 생각과는 달리 일은 걷잡을 수 없이 꼬이기 시작했다. 납치하는 과정에서 깡패들은 경찰을 포함한 세 명의 목격자를 살해하고 말았다. 이에 깡패들은 제리에게 위험부담금으로 계약보다 많은 수고비를 요구하고, 장인은 딸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몸값이 너무 과중하다며 비용을 절반으로 낮추자며 언성을 높인다. 사건의 총책임자인 제리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얼핏 보면 별개의 사고처럼 보이는 두 개의 사건. 그리고 이 말도 안 되는 사건의 한가운데 선 경찰서장 마지. 임신 8개월의 무거운 몸을 이끌고 마지는 폭력과 이기심, 잔혹한 살인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진실을 밝혀 낼 수 있을까?

 미국 독립영화계를 대표하는 코엔 형제는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을 냉소적 유머와 섞어 탁월하게 표현하는 감독들이다. 이는 1996년 영화 ‘파고’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는데, 범죄영화 특유의 스타일인 누아르, 갱스터, 스릴러의 분위기에 나사 빠진 듯한 코미디가 함께 비틀어지면서 코엔 형제 특유의 희비극을 오가는 지독한 블랙코미디를 완성시켰다. 영화는 돈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는데, 그들 중 어느 한 사람도 특별히 욕심이 많다거나 사악하지는 않다. 우리와 비슷한 소시민들이 느끼는 돈에 대한 동경과 박탈감을 전하고 있다. 하나 안타깝게도 그것이 도화선이 됐다.

 영화는 결국 범죄를 계획한 사람들에게 죗값을 물으며 마무리된다. 그러나 범인이 잡혔다 해서 세상이 밝고 정의로워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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