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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옥엽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최근 경주지역 일대에서 발생한 지진이나 태풍 차바로 인한 남부지역의 연속적 피해는 우리의 일상을 새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한편으로는 한 달 전 느꼈던 그 두려움의 기억이 벌써 바쁜 일상사에 묻혀버렸는지도 모르겠다는 우려도 든다.

 역사적으로 지진을 포함한 자연변이 현상은 시대마다 있어 왔는데 선조들은 이를 과학적인 기준보다 도덕적인 기준으로 평가했다. 천재지변을 하늘의 경고로 해석해 정치적인 변화를 모색하거나 죄수의 사면, 백성들의 구휼 등 사회적 안정을 위한 여러 방면의 해결책을 강구했다.

 더구나 자연변이를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반드시 기록으로 남겼는데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등에는 의아해 할 정도로 많은 기사가 나타나고 있다. 「삼국사기」본기(本紀)에는 900여 회의 천재지변이 기록돼 있다. 통계적으로는 신라가 322회, 고구려는 153회, 백제는 191회로 신라가 가장 많은 기록을 갖고 있다. 신라는 2∼3년마다 1회의 자연변이를 만난 셈이며, 특히 정치적 성숙기인 7∼8세기에 집중됐다. 신라는 전반적으로 재앙이 많았고 특히, 가뭄, 장마, 태풍, 지진 등의 피해가 고구려와 백제의 2~3배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재해 극복에 따른 왕권의 강화도 비례적으로 가능했을 것으로 풀이된다. 삼국시대 지진 횟수는 107건으로 평균 0.1회 정도 발생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주로 수도 경주를 중심으로 관측되고 있다.

 「고려사」는 천문지(天文志)를 따로 두었는데, 그 서문에 선조들의 자연현상에 대한 인식이 나타나고 있다. "복희(伏羲)가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굽어 살핀 이래, 황제는 영일추책(迎日推策)하였다. 요(堯)는 해와 달의 운행으로 사람들에게 때를 주었고 순(舜)은 기형(璣衡)을 살펴 칠정(七政)을 배열했으니 그리하여 하늘을 관측하는 방법이 갖추어졌다. 「주역」에서 "하늘이 조짐을 나타내 길흉을 보이면 성(聖人)이 그것을 해석했다" 고 했다. 그러므로 공자가 노나라 역사를 바탕으로 「춘추」를 지을 때, 일식과 성변(星變)을 그대로 두고 삭제하지 않았던 것은 이를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고려는 475년 사이에 일식이 132회, 달과 오성(五星)의 능범(凌犯)과 여러 가지 성변( 星變) 또한 많았다. 이제 그 역사에 나타난 것을 모아서 천문지(天文志)를 짓는다"고 해 자연변이가 국가 운영의 중요한 가치 판단의 자료임을 인식하고 따로 지(志)를 두어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역사 기록 속에 가장 큰 인명 피해를 가져온 지진은 779년(신라 혜공왕 15)으로 경주에서 발생했으며 집들이 무너져 100여 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1392년(태조 1)부터 1863년(철종 15)까지 472년간 대략 1천967건이 넘는 지진이 발생했는데 15세기에서 18세기 사이에 높은 지진 활동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1518년(중종 13) 7월 2일에 발생한 지진의 경우에는 담과 집이 무너졌고 서울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몰라 집 밖에서 자면서 집에 돌아갈 생각을 못했으며 전국 8도가 모두 이와 같았다고 기록돼 있다.

 1905년 인천에 지진계가 설치되면서 근대적인 방식으로 측정이 이뤄지는데 1905년부터 1999년까지 발생한 지진 횟수는 대략 920여 회로 분석된다. 1905년 이후 가장 큰 피해를 준 지진은 1936년 7월 4일 지리산 쌍계사 지진과 1978년 10월 7일 규모 5.0의 홍성 지진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2016년 9월 12일 발생한 5.8의 경주 지진은 사실상 최대 규모이다.

 국가를 운영함에 첨단 과학기술이나 합리적인 제도, 규칙, 법률 등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특히, 천재지변 같은 자연변이가 그렇다. 더구나 사회가 혼란할수록 자연현상에 대한 두려움과 의구심은 더욱 커진다.

 그런 뜻에서, 얽혀있는 실타래마냥 정치·사회적으로 다사다난한 우리의 현실을 보면서 자연변이를 통해 정치적 반성과 사회적 안정을 먼저 도모했던 선조들의 인문학적 통찰력을 되새겨 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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