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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웅 (사)한국인간관계연구소 대표
프랑스판 콩쥐와 팥쥐의 이야기가 있다. 16세기 중엽에 프랑스 피브락에서 출생해 학대받는 아이들의 수호성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아주 착한 성품으로 새어머니 학대에도 원망하지 않고 가족들을 위해 기도한 성녀 제르마나 쿠쟁(St. Germanie Cousin)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평생을 가족들 학대에 시달리며 살았으며, 새어머니는 장애인으로 태어난 성녀를 못마땅해 하며 온갖 구박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못생긴 외모에 워낙 허약한 체질이어서 온갖 병을 달고 살았다. 새어머니는 이런 성녀를 자주 때리고 심지어는 성녀 다리에 뜨거운 물을 부으며 학대했다. 그녀의 아버지도 이를 방관했으며, 더군다나 새어머니에게 자식이 생기자 새어머니는 자신의 딸에게 병이 옮을까 걱정하며 성녀를 양을 키우는 헛간으로 내쫓았다. 추운 겨울에도 덮을 것 하나 주지 않고, 식사도 먹다 남은 빵 조각을 던져줄 뿐이었다.

 그러나 성녀는 이러한 상황을 한 번도 원망한 적이 없이 오히려 양과 친구로 지내며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고 자신이 가족들에게 기쁨이 될 수 있기를 하느님께 청했다. 성녀는 마을 거지들에게 자신이 먹는 빵을 모아 건네주곤 했다. 성녀의 성덕과 믿음은 마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모두가 성녀를 칭송했으나, 그녀는 22살 꽃다운 나이에 헛간에서 숨졌다. 성녀 시신은 40년 뒤 발굴됐는데 그때 시신은 한 군데도 썩지 않고 온전했다고 한다. 성녀는 1867년 비오 6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아버지와 새어머니는 인간으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한 범법자이다. 우리나라 청소년 및 노인 자살률은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게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의 자료인 ‘2015 현황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1만9천200여 건이었으며, 이 가운데 60%가 넘는 1만1천700여 건이 아동학대 사례로 판정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이 같은 수치가 ‘빙산의 일각’이며, 우리나라의 아동보호 체계상 ‘신고조사’를 기반으로 하는 까닭에 위의 통계에 잡히지 않는 제2, 제3의 피해 아동이 많을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자식을 낳고 기른다고 다 부모는 아닌 것이다. 이제는 생물학적 부모보다는 바르게 학습된 부모를 길러야 하는 것이 이 사회의 의무로 부각돼야 하지 않겠는가? 이에 더해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정규학교 시스템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이른바 ‘학교 밖 아이들’의 숫자도 30여만 명이 넘게 집계되고 있다. 그러나 이 수치도 신뢰할 것이 못된다. 지난해에 시행된 학교 밖 청소년법은 ‘초등학교·중학교 등에 입학한 뒤 3개월 이상 결석’한 경우 학교 밖 청소년으로 지정하고, 여성가족부 산하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가 지원 업무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잇따라 발생한 아동폭력 피해 아이들은 수년간 장기결석인 상황에서도 이 센터의 관리 대상에 아예 이름조차 올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의 판단에는 더 많은 아이들이 더 많은 위험 속에서 아우성치고 있지만 이들을 보살펴야 하는 성인들은 관심과 진정성이 떨어진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전술한 학대아동의 실태는 가해자의 80% 이상이 아이의 부모라는 점에서 생각을 달리해야 할 것이다. 가해자인 부모가 자녀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보는 삐뚤어진 인식이 문제다.

 이대로는 안 된다. 예로부터 국방이나 기관 산업의 발전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이 아이들에 대한 투자일진대 현실을 보면 어떤 정권이든 자신의 이익, 더 나아가서는 자기가 속한 부류들의 안녕에 우선하지 않았던가?

 우리 사회에서 학대받는 아이들의 성인 제르마나 쿠쟁의 이야기는 다시는 만들지 말기를 간곡히 바라는 바이다. 교육의 대상은 자라나는 이이들이지만 이들을 양육하고 지원하는 부모 및 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교육도 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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