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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승열 전 인천문협회장
며칠 전 유정복 시장이 ‘인구 300만 돌파’에 즈음해 ‘인천 5대 주권’ 중의 하나인 ‘문화주권’을 발표한 바 있다. 일반 시민들에게는 ‘문화주권’이란 말이 별로 가슴에 와 닿지 않거나 생경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천에서 생애의 대부분을 문화예술에 종사해 온 사람들이라면 이 말이 마치 우리나라가 독립선언을 선포할 때만큼의 큰 울림으로 다가 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인천의 문화예술계는 늘 ‘황폐하다’ 또는 ‘빈약하다’, ‘내세울게 없다’ 같은 평이 주를 이뤄 왔다. 거기에 주눅이 들은 문화예술계 사람들도 거의 기대와 희망을 찾지 못하고 좌절하는 모양새를 보여 왔다. 왜 이런 꼴로 인천의 문화예술계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지내왔을까.

그 원인 중의 하나로는 역대 인천시장들이 문화예술에 대해 과감한 투자를 못해 온 것을 꼽을 수 있다.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는 임기 내의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차근차근 투자를 해야 나중에 후손들 대에 가서 비로소 빛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역대 시장들에 의한 낭비성 투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단기적인 전시효과를 거두려고 무슨 대회이니, 무슨 전시회이니 하며 인천의 문화예술인들을 소외시킨 채 중앙의 문화예술인들을 초빙해서 언론의 시선을 끄는 것으로 만족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관행은 인천의 문화 예술인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줘 왔고, 더 좌절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주눅이 들어온 인천의 문화 예술인들은 ‘인천의 문화주권’이란 말을 꼭 이루고 싶은 간절한 소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각도에서 그동안 인천의 문화예술인들이 가슴 아파해 왔던 말은 인천이 서울의 위성도시 혹은 관문이라는 주장을 들을 때이다. 이런 말들이 다름 아닌 인천 사람들의 입에서 공공연히 나왔다는 것은 반성해야 할 일이다. 특히 인천에서 문화예술로 크게 된 사람들이 보따리를 싸가지고 인천을 떠나며 내뱉은 자기합리화의 말이 "인천에서는 더 이상 클 수가 없다"는 자조적인 언표였다. 그러나 이제 인천도 클 만큼 큰 도시로 성장했다. 인구 300만의 도시 선포는 단순한 숫자만의 의미가 아니다. 그 이상의 능력과 힘을 지니게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인구 300만 명 돌파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초일류 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됐다"며 "인천의 5대 주권을 실현해 시민 행복 체감지수를 높여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 5대 주권 중에 당당히 ‘인천의 문화주권’이 들어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인천의 문화주권’을 실행하는 첫 단추가 ‘인천뮤지엄파크’를 조성하는 일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인천뮤지엄파크’에는 남구 용현·학익구역 1블록 5만809㎡(1만5천 평)에 시립미술관, 시립박물관, 콘텐츠 체험관인 컬처스퀘어, 갤러리·예술영화관, 콘텐츠 빌리지, 예술공원 등이 들어선다고 한다. 이는 이제껏 어느 시장도 시도해 보지 못한 문화예술을 위한 과감한 투자이며, 300만 인천의 얼굴을 새롭게 하는 역사이기도 하다. 그동안 6대 광역시 중 유일하게 시립미술관이 없던 인천으로서는 이제야 제 얼굴을 찾게 된 것이다.

사실 시립미술관에 대한 문화예술계의 요구는 2000년 초부터 시작됐고, 시에서는 2013년에 남구 도화동에 건립 부지를 확정했으나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무위로 돌아간 일이 있다. 그러다 시는 올 들어 시립미술관 건립을 다시 추진하게 됐고, 지난 3월 시립미술관 건립위원회를 개최하면서 논의가 재점화됐다. 그러나 미술관을 지어 놓긴 했는데 전시할 내용이 빈약하거나 경쟁력이 없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면 오히려 웃음거리밖에 안 된다. 세계적인 미술관을 인천에 만들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국내외 관광객들이 인천에 오면 꼭 들러봐야 할 장소로 자리매김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시립박물관도 함께 들어선다고 하니 문화벨트 형성으로 시너지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인천시립박물관에는 시민들이 잘 모르고 있는 역사적 의미가 숨어 있다. 인천시립박물관은 1946년 이경성 관장에 의해 국내 최초의 공립박물관으로 개설된 바 있다. 금년이 70주년이 되는 우리나라의 기념비적인 박물관이다. 이제 옥련동에서 용현 학익지구로 이전하며 새롭게 재탄생한다고 하니 역사적 무게만큼 인천의 또다른 얼굴로 우뚝 서기를 빌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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