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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적 세계는 현실보다는 동화에 잘 어울리는 이야기다. 세상을 살다 보면 딱히 나쁜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벌을 받고, 신의를 버려도 이익을 보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한 집안의 가정사를 들여다볼 때도 이와 비슷하다. 그 가정에 딱히 악역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가족은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뿔뿔이 헤어져 살아가는 것을 선호하는 것도 아니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오징어와 고래’는 10대 청소년인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중산층 가정의 해체를 포착한 작품으로 혼란에 대한 책임을 특정인이나 상황에 전가하지 않는다.

 왕년에 잘나갔다는 말은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뜻이다. 문학박사라는 타이틀과 한때 유명했던 소설가라는 과거형 타이틀에 묻혀 사는 버나드에게 남은 것이라곤 알량한 자존심뿐이다. 반면 버나드의 아내인 조앤에게는 현재가 전성기다. 그녀의 소설이 주목을 받으며 부부 사이에 해묵은 갈등은 결국 이혼으로 귀결됐다. 17년간 함께 살아온 이들의 문제는 문학적 의견 충돌이란 말다툼을 빌미 삼아 끝내 종말로 치닫고야 말았다.

 오랜 시간 냉전 중이던 부모와 함께 살아오던 두 아들도 언젠가는 이런 상황이 오리라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막상 눈앞의 현실로 닥쳐 오자 초등학생인 둘째 아들은 눈물부터 쏟았고, 사춘기를 겪고 있는 첫째는 아버지를 두둔하며 강하게 엄마를 힐난하기에 바빴다. 미처 감정을 추스를 여유도 없이 이들은 엄마와 아빠의 집을 스케줄대로 공평하게 오가며 생활해야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부모님의 민낯을 생생하게 접하게 된다. 당혹스럽기도 했고 공감과 연민을 일으키는 사건들을 통해 아이들은 더디게 눈앞의 현실을 직시해 갔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이 아이들에게 쉽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는 없었다. 첫째는 학업 포기와 사랑에 대한 냉소주의로 첫사랑을 망쳐 버리고, 둘째는 연약하고 감성적인 내면과는 달리 음주와 거친 욕설 등 마초적인 성인의 외적인 취향을 두루 섭렵하며 방황의 길로 빠져든다.

 부모의 이혼과 아이들의 정신적 혼란 및 성장을 그린 영화 ‘오징어와 고래’는 작가이자 영화평론가인 부모의 이혼을 겪은 감독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부분적으로 녹여 낸 작품이다. 영화의 제목인 ‘오징어와 고래’는 영화 속 큰아들이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자연사박물관에서 본 거대한 오징어가 고래와 다투는 모습을 전시한 조각물에 대한 기억에 기인한다. 그 시절 큰아들은 너무 무서워 고사리 같은 손으로 두 눈을 가린 채 조그만 틈으로 겨우 그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영화의 말미에 사춘기에 접어든 청년은 더 이상 숨지 않고 거대 조형물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아마도 비록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것도 존재하지만, 피하고 부정하기보다는 그것이 존재하는 현실을 인식하는 지점에서 어른이 돼 간다는 즉, 성장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읽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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