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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정우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겸임교수
오후 5시40분, 퇴근시간이 다 되어가는 시간, 저마다 카톡으로 퇴근 이후 약속을 잡고 있다. ‘오랜만에 보고 싶은 사람과 약속’, ‘일찍 집에 가겠다는 문자’ ‘동창들끼리 모임 약속’, 등. 그런데 책상 뒤에 앉은 부장님이 말씀하신다. "오늘 우리 저녁 뭐로 먹을까?" 듣던 과장들은 머쓱한 표정으로 "드시고 싶은 거로 하시죠" 그 다음 직원들은 머리를 박고 카톡으로 다시 문자를 보낸다. "오늘도 안 되겠어. 갑자기 야근이다."

 필자가 가상으로 만든 내용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내용일 것이다. 우리나라 직장인은 물론 공공기관 종사자들이 이러한 형태로 정시 퇴근은 어려운 현실이다. 위계적인 조직일수록 조직 구성원들은 상관에 일거수 일투족을 챙기며 자신의 판단은 모두 유보되고, 윗사람이 결정하는 모든 것에 의존하는 ‘결정 유보형’으로 변한다.

 조직 구성원이라면 어느 누구도 조직 내 스트레스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것을 ‘직무스트레스’라 표현하는데, 미국 ‘국립직업안전위생연구소’에서 제시하는 직무스트레스 요인을 세 가지 차원으로 구분했다. 하나는 조직 외부환경 요인, 둘째는 직무특성 요인, 셋째는 욕구불만 요인으로 나누는데 첫째와 둘째 요인은 조직에 대한 외부환경과 업무특성에서 나오는 것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

 그렇다면 세 번째 욕구 불만족 요인으로는 보상 욕구, 안전 욕구, 사회적 욕구, 자아실현 욕구가 충분하지 못할 때 스트레스가 발생한다. 보상 욕구는 경제적 보상이 적절치 못할 때, 안전 욕구는 실직의 두려움이나 감원에 대한 직업 불안정성으로 나타나는데, 이보다 큰 욕구불만은 사회적 욕구와 자아실현 욕구이다. 자신의 능력에 비해 잠재력을 적극적으로 발휘하지 못해서 자신을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못한다면 자신과 조직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올해 대한상공회의소와 글로벌컨설팅 회사 맥킨지가 발표한 ‘한국 기업의 조직건강도와 기업문화 종합보고서’는 한국 기업에서 이뤄지는 회의의 39%, 보고 준비의 31%, 총 업무시간의 43%가 ‘비생산적’이라고 지적했다. 근로자의 태만보다는 비생산적인 기업문화가 낮은 노동생산성의 주요인이라는 분석이다.

 2014년 고용부가 임금근로자 1천 명과 기업 인사담당자 300명을 대상으로 ‘일하는 방식과 문화에 대한 인식조사’를 진행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주5일 정시퇴근을 하는 근로자는 26.5%에 불과했다. 정시퇴근을 하지 못하는 이유로 ‘업무 특성상 필요하다’는 응답은 35.1%에 그쳤다. 근로자들은 ‘야근을 당연시하는 회사문화(25.8%)’, ‘근무시간 중 업무효율이 낮아서(20.9%)’, ‘상사가 퇴근하지 않아 눈치 보여서(9.4%)’, ‘업무량에 비해 인원이 적어서(6.4%)’ 등 순으로 정시퇴근을 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아무런 이유 없는 야근은 없다. 바쁜 업무가 남아서 하는 초과 근로는 많이 있다. 하지만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인력투입으로 얼마든지 경제적인 조직운용이 가능하다. 부장님과 과장님이 남으니까 부하직원들이 함께 남아 저녁을 먹고 덩달아 야근을 해야 하는 비효율적인 조직문화는 개선해야 한다. 위계적이고 통제 지향적, 권위적인 조직문화 특성으로는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조직은 유능한 구성원을 ‘결정 유보형’으로 만들 뿐이다. 혁신적인 생각과 구성원 자아실현을 위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건강하고 현명한 조직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리더십은 조직 비전의 변화와 발전, 구성원의 자발성을 촉진하는 동기부여 등과 연계돼야 한다. 조직구성원이 건강해야 높은 생산성과 집중력, 업무창의성이 발생돼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가까이 갈 것이다. "부장님, 먼저 퇴근하겠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직원의 업무 효율성을 알아보는 상사의 리더십이 인정받는 시대가 어서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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