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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희 수필가
어딘가 달라보였다. 웃을 때 사라지던 작은 눈이 조금 커졌고, 두툼했던 턱은 브이라인을 그렸다. 콧대도 높아진 것 같고, 입술도 선명했다. 얼굴 윤곽이 전체적으로 뚜렷해 보였다. 그뿐이랴. 꽉 끼던 싱글재킷이 단정하게 잘 어울렸고, 작아서 입지 않던 청바지를 다시 꺼내 입었다. 무엇보다도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신발을 신고 문을 나서기 전, 한 쪽 눈을 찡긋하며 되지도 않는 윙크를 다 날렸다. 어이없는 헛웃음을 내면서도 남편의 그런 행동이 싫지 않아 덩달아 끔뻑끔뻑 화답했다. 어쩐지 가벼워진 듯한 남편의 달라진 뒤태에 2주간의 고생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고지방 저탄수화물 식이요법이 화제다. 지방(脂肪) 위주 식단이 우리 몸을 어떻게 바꿔놓는지에 대한 프로그램을 TV에서 방영한 뒤였다. 우리 몸은 음식물이 체내에 공급되면 혈당이 증가하게 되고 이에 따라 췌장에서 인슐린을 분비하게 되는데 이것이 비만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인슐린은 혈액 속의 당을 분해해 세포에 저장해 에너지원으로 쓰는데 남아있는 당은 지방세포로 저장한단다. 지방과 단백질, 탄수화물 중에서 인슐린을 분비하지 않는 것은 오로지 지방뿐이라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방송을 이끌어 나갔다. 다수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시도한 결과는 흥미로웠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떨어졌고 혈압이 낮아졌으며 체중도 실험대상자 전원이 감소했다. 실험식단은 육류와 생선, 치즈, 오일 등으로 지방함량과 칼로리가 대단히 높은 음식들이었다. 전체식단의 영양 섭취비율을 보면 지방 70%, 단백질 20%에 탄수화물 섭취는 10% 미만으로 제한했다. 주에너지원으로 탄수화물을 섭취해오던 우리의 식문화를 생각할 때, 충격이었다. 육류는 물론이고 치즈나 버터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렸다.

 2주일이었다. 고지방 저탄수화물 식사를 선택한 남편은 2주일 동안 매일 고지방 음식들만 골라 먹었다. 하루 세끼를 먹어도 좋다던 라면은 뚝 잘라버렸고, 야식으로 즐겨 찾던 냉동 만두튀김도 쳐다보지 않았다. 육류와 생선을 종류별로 사 와서는 아침저녁으로 해달라고 했다. 조리할 땐 반드시 버터를 첨가하랬다. 이른 아침부터 기름진 음식을 만드는 일은 고역이었다. 남편이 아무렇지 않게 고지방 음식을 먹는 동안 불편한 속을 달래느라 내가 먹은 청포도사탕은 두 봉지나 됐다.

 밥 한 공기 먹지 않는 남편의 2주일을 지켜보는 게 영 편치 않았다. 오늘이라도 그만 포기했으면 하는 귀찮은 마음, 굳건한 의지에 박수를 치며 응원한 마음, 불룩한 배가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찬 마음, 지나친 지방 섭취로 속이 탈나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으로 2주일을 보냈다. 지방을 우대한 남편은 5㎏ 감량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몸이 가뿐해진 남편은 조깅을 시작했고 아이와 다시 배드민턴을 쳤다. 잠깐 바꿔본 식문화가 가져다 준 생활의 활력이었다. 옷태가 되살아난 남편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도 해볼까 하는 마음이 일었다. 고지방 음식을 마주하는 하루하루는 불편했는데 지나고나니 금방이었다. 그깟 2주일, 할 수 있을 거란 의지와 동시에 이내 속이 매슥매슥해졌다. 도무지 실행으로 옮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고지방 식단을 두고 고민을 거듭한 것은 남편의 뜬금없는 제안도 한몫했다. "결혼 20주년 기념으로 리마인드 웨딩 촬영 어때?"

 매슥거리던 속이 두근두근 뛰었다. 사탕 두 봉지에 부쩍 불어난 옆구리살을 빨리 정리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방 우대는 자신 없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저탄수화물 식사였다. 남편이 좋아하는 비계가 많은 삼겹살과 함께 장바구니에 담았던, 옥수수 뻥튀기를 슬며시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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