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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접한 정당정치의 아포리아

김상구 청운대학교 대학원장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6년 11월 07일 월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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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구 청운대학교 대학원장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가 서울뿐만 아니라, 여당의 전통적 텃밭인 대구·경북에서도 5일 열렸다. 박 대통령이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담화를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더욱 격해지는 모양새다.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5%도 안 된다니 12일 예정된 집회에는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지 주목된다. 평소에 정치에 관심이 없어 보였던 사람들도 박 대통령의 정치행태에 분노를 느끼며 집회장을 서성인다. 잘 먹고 잘살게 해달라고 믿고 정권을 맡겼더니 이와는 정반대의 ‘나쁜 정치’ 행태를 일삼았다는 배신감에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개별화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정치가 개인의 삶에서도 몹시 중요하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직접민주정치를 했던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시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해 의사결정을 했지만, 복잡 거대해진 현대사회에서는 직업 정치인들이 그런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자신의 공적 역할을 다하는 시민은 20%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중간에서 옆길로 새서 막걸리 한잔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열심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20% 때문에 나머지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개인적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이 20%가 오늘날의 정치인이라고 할 때 그들의 임무는 막중한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패당을 만들어 친박이니 비박이니 무리를 짓고, 소시민들의 삶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자신들만의 리그를 위한 패당정치를 일삼아 지금과 같은 혼란을 자초했다.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강조했던 막스베버는 정치인들의 자질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나 개인의 안위가 아니라 누군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업"을 추구하는 일로 정치를 비유했다. 정치인들이 권력본능, 영웅심과 허영심과 같은 것에 무너지지 않도록 자신을 항상 들여다봐야 한다고 역설한 셈이다. "삶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단련된 실력, 그런 삶의 현실을 견뎌 낼 수 있는 단련된 실력"을 강조했다. 이것이 안 될 때 정치인들이 무슨 일을 벌일 수 있는지를 미리 경고한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성난 눈빛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흔히들 "그 나라의 정치 수준은 그 나라의 시민수준이 결정한다"라고 스스로를 힐난하지만, 스웨덴의 경우에서 그러하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 스웨덴은 10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럽에서 학력수준도 가장 낮고, 과도한 음주문화가 전부였다. 그런 나라를 오늘날과 같이 바꾼 것은 정치의 힘이었다. 정치가 좋아지고 사회가 발전해 오늘날과 같은 스웨덴의 시민성을 갖추게 된 것이다. 정치가 시민성을 견인한 셈이다. 얼마 전 TV에서 방영된 스웨덴의 국회의원들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며, 지역구민들의 손을 잡고 그들의 숙원사업을 풀어나가고 있었다. 선거 때가 되면 표를 달라고 굽실거리다가 곧바로 거들먹거리는 우리나라의 정치인들과 달랐다.

힘없는 보통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는 튼튼한 정당이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선행돼야 한다. 정당이 튼튼하지 못하면 보통사람들의 의견을 대변할 수 없다. 정당이 별 볼일 없으면 국회의원 개인의 역량에 의지하게 되고,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언론 플레이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대통령이 무슨 짓을 해도 다음번에 내가 국회의원 공천을 받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다. 같은 당에서도 정책이 아니라 비박, 친박으로 무리를 지으니 웃기에도 민망하다. 친박의 무리들 중에 이제 나는 친박을 한 적이 없다고 슬쩍 도망가는 ‘금선탈각(金蟬脫殼)’의 쇼도 벌일지 모른다.

박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는 국민들의 목소리에는 퇴진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요구에 부응하기 전에, 정치인은 수신제가(修身齊家)하고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러야 할 것이고, 정당은 강건하게 작동될 수 있도록 다원적 정당체계로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지금과 같은 허접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적어도 만나지 않을 수 있다. 사람이 착하고 좋다고 정치를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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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의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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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정 2016-11-10 01:05:38    
맞아요.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서 어찌할 수 없이 내려져 오고 있는 그 무서움들
무서움도 모르고 무력감만 더해졌던 현실앞에서
이제는 근본적 변화를 가져와야 살 수 있습니다.
5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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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y Kim 2016-11-07 10:40:34    
이런 안타까운 사건이 대통령과 관련하여 있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받아들이기가 힘에 겨운것은 아마도 작은 동정심으로부터 나오는것이 아닐까 싶다.

대통령 박근혜는 주위에 사람은 많겠지만 진정하게 마음을 나눌 사람이 필요 했을것이며 너무나도 막중한 책임이 누군가한데 기대고픈 마음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시점에서 바로 잡아야 할것은 바로 잡아야 겠지만 과연 하야가 옳은길인가에는 좀더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아니라 시국안정으로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시켜 어려운 경제를 회생시키는데 우리 모두에 힘을 모아야 할때가 아닌가 싶다.
1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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