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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락기 시조시인
온 산야가 단풍으로 물드는 철이건만 이즈음 가을은 가을이 아니다. 온통 최순실 난국이 색단풍을 흐리고 있다. 하늘도 착잡한지 음산한 날씨에다 늦비마저 추적추적 내리는 일이 잦다. 이 해괴망측한 일들이 규명돼 진통을 딛고 이 나라 이 사회가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한여름 그 짙푸르던 잎사귀도 늘 푸를 수만은 없다. 시절 따라 단풍이 들어 낙엽이 되고 고엽으로 나뒹굴며 언 땅을 덮을 것이다. 잎은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제 역할을 다하지만 말이 없다. 이에 ‘고엽(枯葉)’이라는 단시조 한 편을 지어보았다.

 ― 마르고 색이 바래 떨어져서 남기까지 // 삭풍에 휩쓸리며 한 잎으로 남기까지 // 생명이 / 존귀한 것은 /푸른 한때 다 아닌 거 ―

 시조(時調)는 이름 그대로 지금 이 시대에 짓고 읊으며 감상하는 시다. 오랜 역사를 지닌 채 여태까지 살아남은 우리 시조가 지금 다른 문학 장르에 비해 저 고엽 같은 쓸쓸한 운명에 처해 있다면 너무 슬프게 본 것인가? 작년 4월 이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대통령도 참석한 문화창조융합센터 개소식 소식을 들으면서 그 ‘문화’라는 콘텐츠 속에 어찌 겨레 시가(詩歌)의 맏이라 할 수 있는 시조가 들어갈 수 없는가라고 했다. 그렇지만, 작금의 미르·K스포츠재단 국정농단사태를 보며 할 말 자체를 잃었다. 행여나 하는 기대는 허망으로 끝났다. 그간 본인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사)한국시조문학진흥회의 경우, 회원들의 회비와 후원금으로 어렵게 운영되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 시조를 살리기 위해 노력해온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데도, 희망의 싹은 트고 있다. 고엽처럼 마지막까지 생명을 부여잡은 시조는 다시 푸른 이파리를 꿈꾸고 있다.

오는 11월 17일 국회도서관에서 시조문학 진흥을 위한 공청회가 열리게 되었다. 시조의 명칭과 형식에 대한 통일안과 문학진흥법 개정 및 시조진흥 방안이 그 대상이다. ‘시조의 통일안’은 그간 시조계의 전문가들이 분야별로 연구·검토하고 수차례 토론해 의견을 수렴한 결과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전 단계 조치라 할 수 있다. 여기까지 오기에는 이종배 국회의원의 도움이 크다. 시조협회와 공청회의 공동 주최자로 참여하신다. 충주시 수안보에서 우리 단체가 지난 3년간 매년 개최한 ‘수안보온천 시조문예축전’ 행사에 참여해 격려해주시고, 시조단의 현실을 이해하신 덕분이기도 하다.

 한국시조문학진흥회는 창립 취지를 살려 시조의 범국민문학화와 세계화를 향해 애쓰고 있다.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 같은 한몸이라 할 수 있다. 우리 국민 개개인 속에 시조가 튼튼히 뿌리를 내릴 때 세계화는 활활 타오를 수 있다. 그간 우리 단체는 전국 여러 곳에서 시조보급 행사를 했다. 특히, 최근 몇 년간에는 충주 수안보지역 주민 속에 시조 알리기 행사를 한 것이 범국민문학화로 가는 뿌리내리기의 하나라 하겠다. 차제에 충주시와 수안보 당국에 제안한다. 내년에 수안보 조산공원에 둘레길을 조성할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요즘은 전국이 둘레길 천지다. 그저 남이 하니까 따라하는 둘레길은 반향이 적을 것이다. 수안보만의 고유한 색깔이 나와야 한다. ‘수안보’ 하면 전국 최고의 온천수질과 벚꽃대궐이다. 이 하드웨어에다가 시조라는 소프트웨어를 입히면 금상첨화가 될 수 있다. 그간 우리 단체가 충주 수안보지역 풍광을 주제로 해 모아놓은 시조시인들의 시조 작품만 해도 대략 70편에 이른다. 둘레길에 ‘온천시조비공원’을 조성하자. 전국에서 그 지역 풍광만을 제재로 해 창작한 유일무이한 시조비공원이 될 것이다. 길 이름을 ‘온천시조비둘레길’이라면 어떨까? 이 이름만 들으면 수안보를 떠올리게 될 것이고, 나아가 이곳이 시조를 배운 세계인이 찾아오는 시조의 요람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지난 9월 9일 KBS 한글날 특집 때 리투아니아에서는 윤선도의 시조 ‘오우가’를 외우면서 한글을 공부하는 이를 본 적이 있다. 작금 세계 각국에는 ‘세종학당’을 통한 한글 공부 붐이 일고 있다. 시조를 통해 한글을 습득하면 우리 겨레의 정신문화까지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다. 세종학당의 한글 보급 과정 속에 가칭 ‘시조로 배우는 한글’ 과목을 넣으면 어떨까? 앞으로, 시조로 한글을 배운 세계 각국의 외국인들이 시조의 요람 충주 수안보에 ‘온천시조비둘레길’을 찾아 몰려오는 날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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