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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실 대한결핵협회 인천지부장
사람은 보고 배우며, 또한 몸으로 겪으면서 삶의 지혜를 터득하면서 살아간다. 한번 경험한 것은 살면서 자신은 잊었다고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잠재돼 나타나 주위에 함께하는 분들을 의아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학습효과라고 말한다. 우리 집에도 이러한 학습 효과가 있다. 벌써 결혼해 초등학생을 둔 아들이 어렵게 마련한 아파트를 아직도 자신의 이름으로 부동산 등기를 했으나, 서류를 엄마에게 맡기고 있다. 물론 재산권 행사는 할 수 있지만 어렸을 적에 있었던 지워지지 않은 아픈 기억 때문이기도 하고, 아들로서 의당 부모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그것보다 유치원 다닐 나이에 어른들의 이런 저런 불편한 이야기 속에 묻어난 인간관계에서 몸소 느꼈던 시린 기억이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80년대 당시 교통 여건으로 서울의 장승백이 또는 서대문 지역을 가려면 살던 인천 서구 석남동에서 공공교통수단으로 3시간 정도 소요되며 왕복만 해도 족히 6시간이나 됐다. 석남동에서 당시 양평동행 시외버스를 타고 40~50분 걸려 부평역에서 기차를 타고 노량진역이나 서울역에서 내려 다시 버스 타고 목적지에 가야 하며, 더욱이 유치원생이 엄마와 함께 더 어린 여동생을 같이 하면서 겪었던 아픈 기억은 지워지지 않았을 것이고, 또한 즐거워야 할 유치원 생활을 한 달에 2~3번 결석하면서 소위 말해서 끌려 다니던 시달림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하였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어려움을 아이들에게 안겨준 것은 집사람이 말렸지만 나 자신이 쉽게 고등학교 동창에게, 80년대 타고 다니기 어려운 자가용을 몰고 시골 같은 당시 석남동 집으로 찾아와 보증을 요구해 그렇게 친한 동창은 아니지만 중·고등학교 때 연령이 한두 살 많은 선배 같은 동창이고 더욱이 학창시절 학교·학년을 아우르는 영향력이 있었기에 집사람을 다독이고 인감도장을 맡겼다. 그것이 생각지 못한 실수로 나중에 보증 관련 직원의 설명을 듣고 완벽한 보증 설정으로 당시 살던 집이 약 700만 원인데 동창이 나도 모르는 선배에게 생색을 내고 당시 고가인 약 2천만 원 짜리 외제수입 자동차 2대를 구입하면서 인감증명서, 월급명세서, 재직증명서 등 10여 가지 서류로 보증되었으니, 만일에 차량이 도난이나 기타 문제가 있으면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설명을 듣고, 그때부터 집사람이 넋이 나가 울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로 가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통신시설이 돼 있지 않아 회사로 전화해도 한두 번 받다가 아예 따돌리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사무실 아가씨가 없다고 해, 토요일이나 공휴일을 피해 아침을 일찍 먹는 둥 마는 둥하며, 어린 아이들을 끌고 서둘러 복잡한 통근버스, 기차를 타고 사무실로 가보지만 당사자를 만나기는 힘들었고, 더욱이 하릴없이 몇 시간을 기다려도 당사자 얼굴도 볼 수 없고 지친 어린 두 아이가 낯선 사무실에서 엄마 눈치 보며 마음 다친 것이 지금의 아들로 변하게 한 것 같다.

 다 커버린 아들, 딸은 엄마한테 이젠 제발 잊어버리라고 하며, 자신들은 아빠처럼 어리석게 살지 않을 테니 걱정 말라고 한다. 더욱이 며느리도 애 아버지가 마음이 여려서 누가 부탁하면 거절을 하지 못하기에 어머님이 맡아주시면 좋겠다고 거든다. 이젠 사회가 많이 변했으나 아직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시린 아픔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살면서 좋은 이웃에게 따스한 정을 나누지 못할까 걱정이 된다. 아마 우리 세대가 지나면 후손들은 더 나누고 정붙이며, 믿을 수 있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 것이라고 기대해 보기에,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아픈 기억을 주지 않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으므로 이젠 나처럼 잘못된 판단으로 아이들에게 두고두고 지워지지 않는 학습효과가 없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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