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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우디 앨런 감독처럼 성실히 영화를 만드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는 올해 81세의 나이로 자신의 47번째 작품인 영화 ‘카페 소사이어티’를 선보였다. 숱한 필모그래피 중에서 단연 으뜸으로 손꼽히는 수작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작품임에는 이견이 없다. 앨런 감독의 초기작들이 신랄한 풍자와 블랙코미디 풍의 유머로 가득했다면, 노년에 선보이는 영화들은 보다 부드러워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촌철살인이 희미해졌다고 해도 그는 우디 앨런이었다. 다소 무뎌진 칼날 아래에는 삶에 대한 회한과 아이러니라는 극약이 더해져 여전히 그가 던지는 메시지들은 우리 폐부를 깊게 꿰뚫는다.

영화 ‘카페 소사이어티’는 1930년대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성공을 꿈꾸며 뉴욕에서 할리우드로 입성한 바비는 그러나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 다행히 평생 인연이 될지도 모를 아름다운 여인 보니를 만나게 되지만, 그녀와의 사랑도 끝내 이루지 못한 채 고향으로 돌아온다. 비록 목적한 바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고향에서 가족들의 도움과 사랑으로 그는 성공한 비즈니스맨으로 거듭나게 된다. 일도 새로운 사랑도 승승장구하며 어느덧 가정도 꾸린 바비 앞에 느닷없이 옛 연인 보니가 나타난다. 그리고 다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옛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우리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공허한 질문에 두 사람 모두 말을 잇지 못한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 달달한 로맨스와 삼각관계를 그리는 듯 보이는 이 작품은 공허하고 덧없는 아메리칸 드림 위에 세워진 미국을 전사하고 있다. 처음 만나 사랑을 키울 당시 보니와 바비는 할리우드의 황금만능주의적 속물주의를 힐난했었다. 적어도 그들은 물질적 풍요는 크게 누리지 못하더라도 삶과 예술을 사랑하며 낭만적으로 살아가길 희망했다. 그랬던 보니였지만 그녀가 바비를 떠나 다른 남자를 선택한 까닭은 경제적 여유였다. 이들을 포함한 다양한 주변인들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돈만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다. 불법과 폭력, 거짓과 허세 등이 적절히 버무려져 적당히 비열하고, 적당히 타협적인 인간형을 자가 복제하며 확대재생산하고 있었다.

황금시대에 태어나 운이 좋아 우연히 거둔 성공으로 남들이 부러워할 삶을 누리고 있지만, 두 사람의 눈빛은 생기를 잃어 공허하다.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은 것. 그 결과 취할 수 있는 것과 가질 수 없었던 삶에 대한 아쉬움이 씁쓸하게 밀려온다. 그렇다고 해서 뭘 어쩌겠는가, 삶은 흘러가는 것을. 지난 시간을 돌릴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현실을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 영상과 감미로운 선율로 감싼 영화 ‘카페 소사이어티’는 보여지는 바와는 다르게 노장 감독의 선선한 인생관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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