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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특별하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것은 기본이요, 호기심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거기에 더해서 선남선녀임에는 두 말 할 것도 없다. 이처럼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외모의 주인공이 불타오르는 정의감과 남다른 호기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일련의 상업영화들은 기본적으로 ‘몰입’과 ‘재미’의 요소를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오늘 소개하는 영화 ‘아메리칸 스플렌더’는 그 무엇 하나 갖추지 못한 주인공을 등장시키는 작품이다. 그에게 용기란 근근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에 다른 이름이요, 심술과 불만으로 가득한 배 나온 중년 남성이니 그다지 매력이 넘치는 외모는 아니다. 그나마 호기심만은 다른 두 능력보다는 조금 높이 평가할 만한 그런 인물이 오늘 영화의 주인공 하비 피카다.

"평범한 삶은 꽤 복잡한 일이다"라고 말한 하비 피카는 클리블랜드 태생으로 평생을 고향마을에서 살았다. 그의 본업은 병원의 서류 정리 사원으로 일상은 무료하기만 하다. 현재 그의 두 번째 아내도 그의 평범한 일상이 싫다고 짐을 싸서 나간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하비는 성대결절로 목소리도 잃었다. 사랑하는 사람도 곁에 없고,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평소보다 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삶을 한 번 되돌아봤다. 그리고 그간 자신이 관심이 있었던 만화책을 만들어 볼 계획에 착수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그림 솜씨는 형편없었고 막대기 같은 형상으로 인물을 그리는 게 고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를 구성하는 데에는 나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허구의 인물과 허구의 영웅담 대신 자신의 지리멸렬한, 그러나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는 지독히도 평범한 자신의 일상을 만화에 담기 시작한다. 그림을 그려 주는 친구와의 협업을 통해 하비 피카의 일상적인 삶의 단편은 그렇게 한 편의 코믹북이 돼 출간된다.

영화 ‘아메리칸 스플렌더’는 실존 인물 하비 피카와 그가 1970년대부터 작업한 실제 작품 ‘아메리칸 스플렌더’를 일부 차용해서 만든 반전기적 영화다. 2003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작품은 극영화와 애니메이션 기법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오가는 독특한 형식으로 구성된 참신하고 독창적인 영화라 하겠다.

영화와 코믹북의 동명 제목인 ‘아메리칸 스플렌더(American Splendor)’는 미국의 광채라는 의미로 하비 피카다운 반어적 의미를 담고 있는 제목이라 하겠다. 그가 그린 책들 속에 자신을 포함한 미국인들은 광채로 빛나기보다는 누구보다 낱낱이 벗겨져 지독한 풍자로 비틀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삶에 열정을 놓지 않는 하비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비록 불만 많은 투덜이처럼 보이는 하비일지라도 그는 평범한 자신의 일상을 사랑한 사람이었고, 그의 삶에 주인공이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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