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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식 (사) 인천시 서구발전협의회장
인간이 무리지어 사는 곳에 도둑질이 없던 시대가 있었을까. 도둑질의 유래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뿌리가 깊을 것이다. 그래서 도둑에 대해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러 가지 말들이 많이 있다.

 영국 속담에 ‘큰 도둑은 용서받고 작은 도둑은 사형된다’라는 말이 있다. 영국의 유명한 해적 브랜드 선장은 찰스2세로부터 런던탑에 있는 왕관을 훔쳐낸 수완을 인정받아 상을 받는 은전도 입었다. 반면에 장발장과 같은 배고픈 좀도둑은 평생을 어둠 컴컴한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이런 세태를 집대성한 말이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으니 바로 ‘유전무죄’가 아닌가 싶다.

 장자에 나오는 도둑론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도둑에게도 도(道)가 있다. 남의 집 재물의 소재를 아는 것이 성(聖)이요, 먼저 들어가는 것이 용(勇)이요, 맨 뒤에 나오는 것이 의(義)이며, 가부를 판단하는 것은 지(知)이고, 고루 나눠 갖는 것은 인(仁)이다.

 시대가 많이 변한 시점에서 이런 낭만스러운 이야기는 오히려 사치스럽다. 요즘 도둑에 무슨 의리가 있고 무슨 법도가 있는가. 그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 주머니 채우기에 급급하다. 그래서 밀레니엄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도둑론이 나와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도둑의 종류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생명을 구하려는 도둑질과 생명을 앗으려는 도둑질이 그것이다. 정말 배가 고파 도둑질을 하는 사람은 어떤 면에서 동정을 받을 수도 있다. 이 사회가 도둑질을 하도록 용인한 것이고 배고픈 아웃을 돌보지 않은 탓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구하고자 나선 짓이 도둑질이라면 무턱 대고 비난하기만도 어렵다.

 이런 안타까운 도둑질이 있는가 하면 습관적으로 혹은 유흥비를 구하려고 도둑질을 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돈 몇 푼에 귀한 생명을 죽이기까지 하면서 도둑질을 한다. 바로 생명을 빼앗는 도둑질이다. 가정 파괴범까지 포함하는 이런 범죄는 마땅히 발본색원해야 한다.

 특히나 사회가 시끄럽다 보면 희한한 도둑들도 생겨난다. 자칭 임꺽정이나 홍길동이다. 이른바 오래전에 있었던 ‘대도’ 사건이 그런 유형이다. 스스로를 대도라 칭하는 자들은 도둑질을 골라서 한다. 평생 일은 안 하는데 부자로 잘 사는 사람들. 무언가 구린 데가 있는 사람들.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번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집을 턴다.

 이유는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집이 털렸고 거기에 무슨무슨 값진 물건이 있더라는 소문을 제일 두려워하기 때문에 신고를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절도범 가운데서 검찰이나 경찰이 가장 싫어하는 유형이 바로 검사나 경찰서장 집을 터는 자들이라는 것도 일맥상통 한다. "제집도 못 지키면서 도둑을 잡는다고" 하는 비난을 들을까 겁나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렵다고 해서 특별히 도둑질이 많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부유한 사람들보다 도둑질을 많이 한다고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다. 오히려 도둑이 창궐하는 것은 그 시대와 사회의 법 질서 및 도덕성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보는 편이 옳다. 법이 공평하게 적용되고 집행되지 않으면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도둑질할 마음을 품게 마련이다. 그것이 견물생심이다. 예를 들어 권력자나 정치인들이 큰돈을 받아 챙긴 사건을 어물쩍 넘어간다면 너도나도 흑심이 발동하기 쉽고 큰 도둑들은 늘어날 것이다.

 더구나 평생 큰돈을 만져볼 기회가 없는 서민들은 심한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고 그것이 법질서와 법의식에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따라서 도둑질의 죄의 경중을 잘 가려서 큰 도둑은 크게 처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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