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군은 경기북부에서도 가장 북한과 가까운 지역이다. 오토캠핑장으로 유명한 한탄강을 옆에 낀 전곡리에는 우주선이 있다. 동굴을 본뜬 육교와 마을 어귀에 자리잡고 있는 손도끼 모양 표지석 등 사실 우주선의 힌트는 전곡리로 향하는 도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주선의 정체는 1978년 세계 고고학의 흐름을 바꾸고 아시아의 위상을 드높인 전곡리에 자리잡은 전곡선사박물관이다.

#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만도 볼거리

전곡선사박물관은 일단 곡선으로 휘어진 날렵한 모양의 거대한 은빛 건물이 관람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본 경험이 있다면 열 중 아홉은 DDP가 아닐까 착각할 정

▲ 거대한 우주선 모양이 은빛 타임머신을 연상시키는 전곡선사박물관 외관.
도다. 좀 더 관찰력이 있다면 양쪽 게이트가 돌 위에 얹힌 형상을 보고 고인돌이라 할지도 모른다. 2011년 4월 개관한 박물관의 외관은 사실 단세포가 분열하기 바로 직전의 모습과 우주선 모양의 은빛 타임머신을 표방했다.

이보다 중요한 건 거대한 건물 옥상에 올라 연천의 전망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운이 좋으면 독수리도 볼 수 있다). 여기에 밤이면 건물 곳곳에 설치된 색색의 조명들이 너울거리며 한 마리의 용처럼 꿈틀거리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국제설계공모전에 참가해 52개국 583개 팀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프랑스 리콜라스 디마지에르 팀의 설계가 반영된 전곡선사박물관은 자체로도 하나의 훌륭한 ‘전시품’이다.

# 미라부터 각종 유물들이 한자리에

박물관 내부는 전체적으로 거대한 동굴을 연상시킬 수 있도록 둥글다. 출입문과 연결된 지하 1층에서 지상 1층으로 오르면 왼쪽 기획전시실의 주인공, 5천300년 전의 미라 ‘외찌’가 누워서 관람객들을 반긴다. 일명 ‘아이스맨 외찌’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이 미라는 1991년 9월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의 경계 지역인 외짤 알프스에서 발견된 냉동 미라다. 당시 함께 발견된 도구들도 전시 중이다. 외찌 너머에는 매머드와 검치 호랑이 등 선사시대 동물들의 화석 뼈들이 전시돼 있다.

▲ 인류의 발달 과정을 재현한 박제인형들.
기획전시실 또 하나의 자랑은 교과서 연계 프로그램이다. 전곡선사박물관은 올해 처음으로 교과서에 등장하는 구석기시대의 주먹도끼, 청동기시대의 청동검, 신석기시대의 토기 등과 함께 유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영상으로 선보이고 있다.

기획전시실을 나와 상설전시실로 이어지는 로비에는 기념선물을 살 수 있는 뮤지엄숍이 있다. 뮤지엄숍은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여행을 떠날 때 여권을 만들 듯 전곡선사박물관 내 타임머신을 이용하기 위한 시간여행권(4천 원)을 입장료 외 별도로 판매하고 있다. 이 여권 소지자는 자신의 생일을 조합해 구석기식 이름을 짓고, 박물관 곳곳에 마련된 포토부스에서 자신의 얼굴을 찍은 뒤 전시 테마와 관련된 선사시대 유형별 인류의 모습과 합성해 출력할 수 있다. 박물관 곳곳의 포토부스를 찾아 시간여행권을 완성시키는 것도 전곡선사박물관의 숨은 묘미 중 하나이다.

# 세계 고고학 역사를 바꾼 ‘주먹도끼’

메인 테마라 할 수 있는 상설전시실에는 전곡리에서 발견된 주먹도끼 5점이 전시돼 있다. 1979년 동아시아 최초의 발견인 이 주먹도끼는 그 전까지 구석기시대 이전의 유물이 없어 역사가 짧다며 동아시아를 무시하던 세계 고고학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중앙박물관 구석기시대 테마에서 가장 먼저 전시된 것이 바로 전곡리에서 발견된 주먹도끼다.

▲ 선사시대 주거 환경이던 매머드로 만든 집.
이 주먹도끼는 동두천시에서 근무하던 미군 병사 ‘그렉 보웬’이 애인과 데이트를 하다 발견했다. 고고학적 지식을 갖고 있던 그렉 보웬은 발견한 석기를 당시 서울대 박물관장이던 고(故) 김원령 교수에게 신고했고, 학술적 지표조사를 거쳐 아슐리안형(삼각형 모양으로 양쪽 면을 고르게 손질한 형태) 주먹도끼로 학계에 보고됐다. 주먹도끼의 발견으로 전곡리유적(지)은 국가사적 제268호로 지정돼 보호를 받게 됐다.

상설전시실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가 ‘인류의 위대한 여정’이라는 작품이다. 700만 년 전의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스’부터 ‘호모사피엔스’까지 인류의 발달 과정을 담은 박제 인형들이 순서대로 전시돼 있다. 털부터 눈망울까지 현실적으로 재현한 박제 인형들은 1개당 1억 원이 넘을 정도로 공들였다.

하나의 박제 인형 발밑에는 당시 인류가 살았던 시기의 유물과 설명들이 이해를 돕는다. 전곡선사박물관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거의 대부분 박제들에 보호 유리벽을 설치하지 않아 관람객들이 코앞에서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동시에 박물관의 고민이다. 밀개로 무두질하는 할아버지 박제 인형은 몇 차례나 관람객들이 밀개를 가져가 현재는 빈손으로 망연자실 앉아 있는 상황이다. 과일을 따는 여성 박제 인형은 원래 엉덩이에 털이 붙어 있었지만 관람객들에게 모두 뽑혀 현 인류처럼 반질반질한 엉덩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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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00년 전의 미라 ‘외찌’
전곡선사박물관 김소영 학예연구사는 "박제가 상하는 것도 문제지만 박제를 만들 당시 화학약품을 쓰기 때문에 관람객들이 박제를 직접적으로 만지지 않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상설전시실 안쪽 깊숙한 곳은 동굴로 꾸몄다. 동굴 입구의 화톳불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구석기시대의 동굴 벽화들이 펼쳐진다. 아기들이 크레용으로 그린 낙서처럼 동굴 벽화들은 눈에 익기 전까지 그림처럼 보이지 않지만 내부로 들어갈수록 사자와 곰, 코뿔소 등이 생동감 있게 뛰는 것까지 묘사돼 있다. 놀라운 수준의 벽화들도 있기 때문에 너무 빠른 걸음으로 동굴을 지나기보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숨어 있는 벽화들을 발견하며 걷는 게 동굴을 관람하는 방법이다. 이 동굴의 마지막에는 원시인들이 벽화를 그리는 과정이 영상으로 재현돼 있다.

# 전곡의 세월 그대로 담은 유적 ‘生生’

▲ 실제 지층의 단층을 확인할 수 있다.
전곡선사박물관을 나와 박물관을 등지고 5분 정도 걸어가면 움막 형태가 하나 나온다.

전곡리유적에 대한 다양한 층위 정보(세월 따라 쌓인 지층에 대한 각종 정보)를 얻을 수 있는 ‘E55S20-IV피트’다. 이곳은 과학적 연구조사가 이뤄졌다. 전곡리유적(지)의 생성 단계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내부에 들어서면 땅을 반듯하게 깎은 다양한 지층을 볼 수 있다. 조사 현장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인디애나존스’가 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지금까지 연구에 따르면 하부 현무 암반은 약 50만 년 전 형성됐고, 그 위의 퇴적층은 30만 년 전부터 강과 바람의 영향으로 만들어졌음이 증명됐다.

비교적 상위의 ‘AT’와 ‘K-TZ’층은 각각 22만 년에서 25만 년 전, 또 90만 년에서 95만 년 전 일본에서 분출한 화산에서 나온 화산재가 바람을 타고 날라와 쌓인 것이다.

물이 스며들어 만들어진 Y자 모양의 하얀 무늬는 ‘토양쐐기’로 빙하 주변 지형에서 확인된다.

이곳은 보호 차원에서 관람객들에게 상시 개방되는 곳은 아니다. 그러나 상설전시실 한쪽에는 이러한 구조를 담은 지층 설명 안내판이 있기 때문에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도움말=전곡선사박물관 김소영 학예연구사>

박노훈 기자 nhp@kihoilbo.co.kr

양진영 기자 camp@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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