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김포)매립지 매립공사에 참여한 사정은 엿보이나 그 공사에 참여한 노역자들이 누구인지, 참여 기간이나 제공 노동력의 정도 등을 알 수 없다.’ 자조근로사업장인 청라매립지에서 둑막이 공사를 벌인 노역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소 제기 6년 만인 지난 8월 18일 서울고등법원에서 내린 판결 내용이다.

 얘기인 즉, 노역자들이 근로자조사업으로 매립공사를 한 사실은 안정하는데, 일했다는 증거가 없다. 그러니 국가는 노역자들에게 손해를 배상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알다가도 모를 판결입니다. 청라(김포)매립지는 동아건설산업㈜(이하 동아)이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농어촌공사(이하 공사)의 것이 되려야 될 수 없는 땅이었습니다." 최경희(75)청라매립지대책위원장은 청라매립지의 주인은 단연코 자조근로사업에 참여한 노역자들이라고 말한다.

▲ 최경희(75) 청라매립지대책위원장이 영세 근로자의 몫인 청라매립지의 땅을 정부가 독식한 것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최 위원장은 스무서너 살 무렵에 청라 공유수면 매립면허가가 나온 1964년 첫해부터 매립사업에 참여했다. 당시 총무 겸 화약주임이었던 윤차웅(93)의 밑에서 경리 보조를 하곤 했다.

 영세 노역자들에게 자조근로사업장 청라매립지 사업은 희망이자 미래였다. 매립 초기 전국 각지의 헐벗은 젊은이 2천여 명이 몰려들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내 땅을 가질 수 있다는 꿈, 그것이었다.

 "세간에는 청라매립지를 동아가 매립한 줄로만 알고 있어요. 그건 절대 사실이 아닙니다." 자조근로사업으로 시작한 것이 청라매립지라는 게 그의 얘기다.

 그 단초는 ‘노역에 참여한 가구주에게는 1인당 9천900㎡(1㏊)씩 토지를 분배한다’고 정한 정부의 자조근로사업 실시 요령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영세 근로자들은 ‘미공법 480-Ⅱ’에 따라 하루 품삯으로 밀가루 3.6㎏의 배급으로 곯은 배를 채웠다. 국제원조 성격으로 미76공병대와 미 인천항사령부의 장비를 지원받아 둑을 쌓았다.

 "피땀 흘린 노역자들에게 1㏊는커녕 땅 한 평조차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온통 있는 자들의 차지였습니다." 최 위원장은 청라매립사업은 곧 수탈의 역사라고 진단한다.

"최초 매립면허권자인 이명수 봉덕학원 전 이사장(제3공화국 공화당 서울 영등포을(乙)구 지구당위원장)은 노역자들에게 일당으로 분배돼야 할 밀가루의 절반을 빼돌렸습니다. 그런 뒤 빵 원료 등으로 김포 신앙촌에 차떼기로 팔았습니다." 최 위원장은 윤차웅 씨의 녹취 증언을 들려줬다. 빼돌린 밀가루를 팔아 마련한 돈 중 7천만 원으로 조선시대 왕족인 이 씨 일가의 재산을 관리했던 운현궁 소유였던 청라도 전체를 샀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청라매립지를 밑천으로 이명수 일가가 ‘대(代)를 잇는 부(富)’를 누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청라매립지의 일부인 19개 필지 12만8천여㎡는 이명수 전 이사장의 부인 이봉덕(2010년 사망)이 이사장으로 있던 봉덕학원과 득양학원의 수익용 부동산으로 증여와 출연됐다. 그 일가는 이명수 전 이사장이 사망한 뒤에도 최초 매립면허권을 주장하며 동아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6만6천여㎡에 대한 소유권 이전을 받았다.

 국가도 이 수탈의 역사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건설부는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실효된 이명수 전 이사장 등의 공유수면 매립면허를 회복시키는 대신 매립면허권을 국영 기업체인 대한준설공사(당시 사장 김재현)에 넘겼습니다." 청라매립지 매립면허가 실효(1971년 4월 16일)된 지 1개월도 채 안 된 그해 5월 11일이었다.

 조건은 ‘면허기간 4년과 2개월 내 구체적인 사업계획 제출’, ‘투자비율 평가에 따른 이명수 이사장과 대한준설공사 간 토지 분배’였다.

 국영 기업체인 대한준설공사는 1년 5개월이 지나도록 매립공사에 착수하지 않았고, 건설부는 1972년 10월 31일 매립면허를 취소했다. 그러고는 1980년 1월 14일 동아 측에 농경지 조성 목적으로 청라 공유수면(3천600㏊) 매립면허를 내줬다.

정부는 국유화 조치한 노역자들이 7년에 걸쳐 쌓은 제방을 당초 감정가(4억7천583만 원)의 3분의 1도 채 안 되는 1억7천500만 원에 1985년 1월 5일 동아 측에 팔아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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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라매립지 노동자
동아의 청라매립사업 제방 길이 9천366m 중 노역자들이 쌓은 제방 6천93m를 포함하고 있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영세 근로자들이 둑을 막고 매립한 청라매립지를 정부가 차지했습니다." 최 위원장은 동아가 전체 매립지 3천630만㎡ 중 2천75만㎡를 수도권쓰레기매립지 용도로 환경부에 넘겼다고 지적했다. 그 금액은 523억 원으로 3.3㎡당 8천317원이었다. 정부는 이어 1999년 동아의 청라매립지 1천225만㎡를 6천355억 원에 사들였다. 3.3㎡당 17만2천 원꼴이었다.

 "청라매립지는 LH가 1천778만㎡를 청라경제자유구역(1천796㏊)으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LH가 땅을 사들일 때의 가격이다. 3.3㎡당 25만3천 원에 LH에 매각했다. 공사도 3.3㎡당 37만6천 원에 넘겨받았다.

 "공기업은 이 땅을 3.3㎡당 1천만 원 가까이 팔았거나 팔고 있습니다. 노역자들이 일군 청라매립지의 최종 수혜자는 정부입니다." 그가 꼭 하고 싶은 말이다.

#청라매립지 조성 추진 일지

▶ 1963. 10. 25 : 수산양식 목적 인천 원창·경서동 지선 공유수면(1천425㏊) 매립면허 신청(한국천해개발공사 대표 김옥창 등 3명→농림부 장관)
▶ 1964. 02. 21 : 김옥창-이명수 동업계약 체결
- 토지 분배 조건으로 한국천해개발공사 대표 명의 이명수로 변경
▶ 1964. 09. 09 : 이명수 등 3명 공유수면(1천275㏊) 매립면허 취득
- 준공기한 1968. 09. 09
▶ 1968. 02. 16 : 매립목적 공장부지 조성으로 실시계획변경 허가
▶ 1969. 07. 18 : 매립지 준공 후 투자 지분에 따라 토지 분배 약정(이명수↔인천시 북구청장)
▶ 1970. 12. 30 : 공유수면매립면허 준공기한 연장 신청(이명수→건설부 장관)
▶ 1971. 04. 16 : 공유수면 매립면허 실효(건설부 장관→이명수)
▶ 1971. 05. 11 : 공유수면매립면허 효력 회복 및 매립면허 양도·양수(이명수→대한준설공사)
▶ 1972. 10. 31 : 공사 미착공 대한준설공사 매립면허 취소
▶ 1978. 08. 16 : 민간기업 참여 간척사업 방침 확정
- 동아건설 : 김포간척지. 현대건설 : 서산간척지(1만5천409㏊)
▶ 1980. 01. 14 : 공유수면(3천800㏊) 매립면허(농림부 장관→동아건설산업㈜)
- 준공기한 공사착수일로부터 3년
▶ 1984. 06. 01 : 동아건설 이명수와 양도 약정 체결
- 내용 : 매립공사 준공 후 매립한 토지 6만6천㎡ 양도
- 조건 : 이명수 등 최초 매립권자는 동아건설 매립사업 포기 
▶ 1991. 01. 08 : 김포지구 공유수면(1천649㏊) 준공 인가(농림부)
▶ 1998. 09. 07 : 동아건설산업㈜ 농림부에 김포매립지 정부 매입 요구
▶ 1999. 05. 31 : 한국농어촌공사 김포매립지 1천243㏊ 매입계약 체결(6천355억 원)
▶ 2002. 04. 04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지 실현 방안’ 경제특구 개발 반영
- 화훼수출단지, 위락·주거 및 국제금융 업무기능 유치
▶ 2003. 08. 11 : 재경부 ‘인천경제자유구역 지정안’ 고시
▶ 2003. 12. 02 : 한국토지공사와 김포매립지 청라지구 1천34ha 매매계약 체결



 [‘영욕의 땅, 청라매립지 그 진실은’ 관련 정정 및 반론보도]

 본보는 지난 2016년 10월 3일부터 2017년 2월 24일까지 게재한「영욕의 땅, 청라매립지」제목의 연재기사를 통해 이명수 봉덕학원 전 이사장이 청라도 매립공사에 참여한 노역자들에게 품삯으로 지급하여야 할 밀가루 배급량을 부풀려 수령한 뒤 이를 빼돌려 마련한 돈 7천만 원으로 1965년에 청라도 전체를 샀으며, 봉덕학원은 노역자들이 대가로 받아야 할 땅을 빼앗고 처분하여 청라달튼외국인학교를 건축했다는 취지의 보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확인결과 봉덕학원 전 이사장 이명수가 경서동 일대 토지를 구입한 시점은 간척공사 매립 허가를 받고 착공에 들어가기 전인 1964년이므로 매립공사에 참여한 노역자들의 품삯으로 지급되어야 할 밀가루를 빼돌려 마련한 돈으로 해당 토지를 구입했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이 아닙니다.

또 봉덕학원은 청라달튼외국인학교 신축자금은 1964년 매립지 공사 착수 이전에 봉덕학원 전 이사장 이명수가 매입하여 학교법인 봉덕학원에 출연한 재산과 1948년 취득한 서울 영등포구 소재 학교법인 봉덕학원 소유 토지를 1993년 처분하여 건축한 경서동 소재 유스호스텔 매각대금으로 마련한 것이므로 청라달튼외국인학교가 노역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땅을 팔아 건축비를 마련했다는 내용도 사실과 다르며, 노역자들의 후손들이 이명수의 후손들을 상대로 청구한 민사소송(1심)에서 이명수 측이 승소하였다고 밝혀왔습니다.이 기사는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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