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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겸 시인
요즘 우리나라가 난데없는 ‘저주의 굿판’ 논란에 휩싸이며 국정농단, 국기문란, 심지어 "대한민국이 무당공화국이냐" 라며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급기야는 국민안전처장관 내정 후보자가 지난 11월 9일 자진 사퇴를 했다. 주된 이유가 지난 5월, 서울 광화문에서 굿이 포함된 ‘구국천제 재현 문화행사’에 참석한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사실, 굿의 사전적 의미는 ‘무당이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노래와 춤으로 길흉화복 등 인간의 운명을 조절해 달라고 비는 원시적인 종교 의식이며 제의’로 돼 있다. 일종의 기복이 깃든 민속신앙이라 할 수 있으며 현재는 전통 민속 문화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다.

 굿의 역사는 고조선 시대부터 행해진 것으로 본다. 단군왕검이라는 뜻 자체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이자 백성을 다스리는 지배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었으므로 사학자들은 이때부터 제례의식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부족국가인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舞天) 등 삼국시대까지 그대로 전승돼 여러 제의가 행해졌다. 이것이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종교의 사상적 배경이 돼 민중 속에서 면면히 자리를 잡아 왔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는 우리 민족의 전통신앙이 민중들의 삶과 함께 협동하는 공동체를 만들고 각 마을단위로 행해지는 대동굿이 한민족의 혼을 심어주고 있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문화와 풍속을 보존하며 민족 단결심을 가져온다는 이유로 민족 말살정책에 의해 사교(邪敎)로 왜곡시키며 탄압을 했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사찰에서는 불교, 도교, 전통신앙을 함께 아우르는 삼성각(三聖閣)과 무속신앙이라 할 수 있는 산신을 모시는 산신각(山神閣) 등 전각을 세우고 예불을 드리는 것으로 볼 때 불교는 우리의 무속신앙을 하나의 전통 종교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굿의 종류는 지방마다 차이가 있는데 경기도지방에서는 당굿· 재수굿· 병굿· 성주맞이· 대동굿·진오귀굿· 푸닥거리 등이 있으며, 호남지방에는 성주굿· 영화굿· 도산굿· 축원굿· 병굿· 환자굿· 중천굿· 명두굿· 곽머리· 씻김굿· 혼굿 등이 있고, 영남지방에는 도신굿· 치방굿· 삼제왕굿· 별상굿· 맹인거리· 광인굿 등이 있다. 지금은 각 지역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 보존하고 있으며 해마다 열리는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 장르가 됐다. 뿐만 아니라 일본 위안부 희생자와 제주 4·3항쟁 희생자,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세월호 희생자 등 각종 추모 모임에도 죽은 사람의 넋을 달래며 위로해 주는 굿의 한 종류인 진혼굿이 행사의 한 과정으로 제수된다. 지역마다 열리는 풍어제나 풍농제, 산신제, 마을 고사 등에서도 당연히 굿은 하나의 의식행사에 포함돼 있다. 이때마다 표를 먹고 사는 지방의원, 지방자치단체의 장, 국회의원 등 대다수의 정치인들은 자연스럽게 동참해 희로애락을 같이해 왔다. 그렇다면 여기에 참석한 마을 사람들과 추모객들은 모두 사교와 주술에 빠진 정신 나간 사람들일까?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정 종교를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이사 가는 날이나, 결혼식이나 집안의 대소사를 정할 때는 손 없는 날이라 해서 길일을 택했고 심지어는 집안의 못 하나 박을 때도 가려서 박는 전통의 무속 신앙적 풍습이 있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민족 곁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민속신앙에 대해 지역의 전통문화 행사나 추모모임에서 국태민안이나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한 혼굿 등 일부 프로그램 운영상 굿을 벌인 행사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마녀사냥식 여론몰이와 샤머니즘적 사교로 몰아치며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례도 있다. 예컨대 진혼굿을 하는 자리에 ‘내가 참석하면 축복의 굿판이고 남이 참석하면 저주의 굿판’이란 말인가,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혼미한 세상, 지금 우리는 폭풍주의보 속에서 해무가 잔뜩 낀 바다 위를 항해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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