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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범 아나운서
얼마 전에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우리나라 성인 남녀의 절반은 평소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시장조사전문기관인 엠브레인 트렌드 모니터가 만 19세∼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일상생활에서의 정서경험과 콘텐츠 소비의 관계’에 관해 설문조사를 해보았더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한국사회는 감정표현에 상당히 인색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여성(40.8%)보다는 남성 (57.2%)이 평소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 답했고, 연령대로는 50대, 40대, 20대, 30대 순으로 감정을 숨기려는 경향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내용적으로 보면, 전체 10명 중 6명은 화가 나도 상대방 앞에서는 참는 것이 좋고(61.6%), 남에게 눈물을 보이는 것이 창피하다(57.9%)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낙엽 지는 것만 봐도 까르르’한다는 젊은 세대가 오히려 감정을 되도록 숨기는 것이 좋다고 대답한 비중이 높았다는 사실입니다(20대 50%, 30대 45.6%, 40대 38.8%, 50대 35.2%). 전문가들은, 전반적으로 억압돼 있는 사회 분위기가 감정 표현에 익숙한 젊은 세대를 억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나타냅니다. ‘최근에 웃어본 일’을 물어본 설문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로 문화콘텐츠를 소비할 때였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에 웃어본 기억이 있기는 하지만, 그 웃음은 일상생활에서 겪은 경험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일은 텔레비전의 예능 프로그램 시청이 66.7%로 가장 많았고 드라마나 영화 감상이 거의 비슷한 수치(66.6%)였습니다.

갑자기 방송사와 영화 제작사의 책임이 무겁게 느껴집니다. 그 뒤를 이어 책, 만화보기(36.5%) 음악 감상(29.8%)의 순으로 결과가 나왔습니다. 대화 속에 웃었다는 대답은 59.6%였습니다.

여러분은 가장 최근에 어느 상황에서 웃으셨습니까? 웃음뿐 아니라 슬픔의 감정도 비슷한 결과입니다. 최근 슬픈 감정을 겪은 응답자 2명 중 1명은 드라마와 영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답했습니다.

 게다가 응답자의 10명 중 3명은 드라마와 영화를 보는 것이 요즘 ‘삶의 유일한 낙’이라고까지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씁쓸합니다. 독자 여러분 가운데에는 ‘뭐 웃을 일이 있어야 웃지’라고 반문하실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요즘에는 더 그렇습니다. 정치, 경제, 교육 등등 분야를 막론하고 쉽게 웃을 수 있는 상황이 결코 아닌 것은 맞습니다.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윌리엄 제임스는, 사람은 흥분을 일으키는 사실을 지각하면 신체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이러한 변화에 대한 느낌이 바로 감정이라고 그의 논문에서 밝혔습니다. 신체적 반응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야 감정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두렵기 때문에 떠는 것도 아니라, 떨고 있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낀다는 이야기입니다. 덴마크 생리학자인 랑게도 비슷한 시기에 같은 주장을 했기 때문에 이것을 일컬어 ‘제임스-랑게 이론’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행복해야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면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웃을 일이 없다는 핑계로 매일 매일 우울하게 지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모 대학병원의 건강 칼럼 내용 중 일부를 인용합니다. "웃음은 특정한 위협이나 스트레스 상황에 압도당하지 않고, 사고를 명료하게 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웃음은 불안을 해소하고, 불편감을 감소시켜 주며, 스트레스에 의한 면역억제 작용을 상쇄합니다.

 그리고 공포가 웃음으로 발산될 때, 타인과 더 잘 관계를 맺게 됩니다. 웃음은 카테콜아민이나 엔도르핀처럼 사람들을 활기차고 건강하게 하는 물질의 분비를 증가시킵니다." 이제는 실천이 중요합니다. 건강과 행복에는 물론이고 타인과 잘 관계를 맺게 하는 소통에도 좋은 특효약이 바로 ‘웃음’이라고 하니까 말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2016년 한 해, 대한민국 모두가 웃으며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과제입니다. 평소 자신의 표정은 어떠한 지 되돌아보시고 매일 5분씩 일부러라도 웃는 연습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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